‘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 출간한 배종훈 작가 ‘템플 스케처’ 활동하는 국어교사 만어사 등 사찰 29곳 풍경 담아… 사찰 100곳 ‘스케치’하는게 목표 “그림이든 글이든 꾸준히 해야”
경남 밀양 만어사(萬魚寺)에 얽인 전설을 소재로 한 배종훈 작가의 ‘당신을 기다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캔버스에 아크릴, 73cm×53cm, 2021년. 담앤북스 제공
옛날 옛적 동해 용왕의 아들이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한 사찰에서 멈춘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들도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 경남 밀양 만어사(萬魚寺)에 얽힌 전설이다.
최근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담앤북스)를 출간한 배종훈 작가(46·사진)는 그의 사찰 스케치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으로 만어사를 꼽았다. 그는 ‘당신을 기다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의 작품과 함께 “부처님이 오시는 날, 그날이 오면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용왕의 아들도, 물고기도, 우리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썼다.
이 책에는 경기 파주 보광사, 충남 서산 개심사와 부석사, 전남 화순 운주사와 만연사, 강원 양양 낙산사, 경북 영덕 장육사 등 사찰 29곳의 풍경과 기록들이 실려 있다.
그는 2019년 초부터 그림 도구와 카메라를 챙겨 매달 한 번씩 사찰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떠났다. “책에 언급된 사찰들은 서너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어 익숙한 곳들이다. 사찰들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그곳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이 거의 없는 사찰의 내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한때 미술과 교직을 두고 진로를 고민했던 그는 따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다. 2004년 교사가 되기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만화로 옮긴 ‘넥타이 휘날리며’가 첫 책이다. “그림이든 글이든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림은 반복할수록 좋아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작품을 올려 독자들과 소통하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앞으로 6년에 걸쳐 사찰 100곳에 대한 작업을 하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사찰 여행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한다.
“조급한 마음은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사라지고 없습니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평소 살펴보지 않던 나무와 바위, 흙, 그리고 작은 벌레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 어쩌면 부처님이 부리는 마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