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문학 명맥 이어가는 출판계 두 거목

입력 | 2021-08-02 03:00:00

열린책들이 창립 35주년을 맞아 출간한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표지에 돼지 꼬리를 형상화하는 등 개성 있는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열린책들 제공




열린책들, 창립기념 ‘중단편 세트’

창립 35주년 맞은 열린책들
러 ‘붉은 수레바퀴’ 국내 첫 소개후 다양한 국가 문학책 2100여권 펴내
창립기념 스무편 골라 세트 출간 “독자들 부담없도록 권당 3500원”


영미권 번역 문학이 인기를 끌던 1980년대, 한 신생 출판사 대표가 모험을 시도했다. 첫 책으로 현대 러시아 문학책을 내기로 한 것.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이 러시아 혁명을 그린 소설 ‘붉은 수레바퀴’는 그렇게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총 7권인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을 낼 즈음엔 출간하는 게 손해였지만 다음 권을 기다리는 소수 독자들을 위해 전체 시리즈를 완간했다. 이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등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를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문학책을 내며 출판계의 외연을 확대해 왔다. 출판사 열린책들 이야기다.

국내외 문학을 꾸준히 소개하기 위해 애쓰는 출판사들이 있다. 해외 문학 전문 출판사로 꼽히는 열린책들은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러시아와 동구권 문학에 심취했던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는 1986년 출판사를 세우고 당시 독자에게 생소한 문학세계를 펼쳐 보였고, 이후 출판사는 2100여 권을 펴내며 탄탄하게 성장했다.

열린책들은 35주년을 기념해 자사의 세계 문학 시리즈에서 중단편 고전 명작 스무 편을 골라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출간했다. 정오와 자정을 뜻하는 ‘NOON’과 ‘MIDNIGHT’ 세트로, 각각 10권씩 구성했다. NOON 세트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등 서정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MIDNIGHT 세트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 묵직하고 강렬한 작품을 모았다.

각 세트는 3만5000원으로, 한 권당 3500원이다. 홍유진 열린책들 이사는 “독자들이 해외 문학을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책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에서 인기를 끈 작품을 주로 출간하다 보니 자연스레 해외 문학을 다양하게 소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작품 위주로 출간하겠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월간지 800호 발간

66년 8개월간 달려온 현대문학
토지-태백산맥 등 소설 4000여편, 시 6000여편 산문 4000여편 소개
주요작가 작품 71편 실은 특대호… 표지는 윤형근 미발표작으로 꾸며



현대문학 800호는 단색화가 윤형근의 미발표 작품이 표지를 장식했다. 윤형근은 살아생전 현대문학 표지 디자인을 자주 했다. 현대문학 제공

1955년 1월 창간호를 낸 후 66년 8개월간 휴간 없이 달려온 문예 월간지 현대문학은 올해 8월 800호를 맞았다. 800호를 낸 문예지는 세계적으로 현대문학이 유일하다. 그동안 4000여 편의 소설과 6000여 편의 시, 4000여 편의 산문이 현대문학을 통해 소개됐다.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춘수의 ‘꽃’이 처음 나온 지면도 현대문학이었다.

현대문학 표지는 우리나라 대표 화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창간호는 김환기의 작품이 장식했고 이중섭 천경자 장욱진의 작품도 실렸다. 800호 표지는 현대문학 표지 디자인을 자주 했던 단색화가 윤형근(1928∼2007)의 작품을 채택했다.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유작 한 편과 미발표 작품 두 편을 꼽아 꾸몄다. 512쪽의 800호 기념 특대호는 구병모 김금희 편혜영 등 소설가 35명에게 짧은 소설을, 박연준 안희연 등 시인 36명에게 시를 받아 실었다. 현대문학은 발행 부수가 한창때의 10분의 1로 줄어 수익이 나지 않지만 한국 문학을 키우는 임무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열린책들은 각국의 사랑받는 작가들을 발 빠르게 국내에 소개해 왔고 현대문학은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정통 문예지를 오랜 기간 이끌어 왔다”며 “두 회사 모두 문학과 독자 사이의 훌륭한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