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세계약 6만채 분석… 신규 전세금 평균 5억6875만원 계약연장 보증금은 4억3137만원… ‘새 계약시 폭탄 인상’ 우려가 현실로
올 11월 결혼하는 직장인 이모 씨(36)는 아직 신혼집을 구하지 못했다. 애초 점찍어둔 서울 전용 59m²짜리 아파트 전세 가격이 1년 전 6억 원대 중반에서 최근 8억 원으로 뛰었다. 그는 “반전세도 알아봤지만 월세만 최소 200만 원”이라며 “집을 미리 구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계약갱신요구권,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를 뼈대로 하는 임대차 3법이 도입된 지난해 7월 말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를 새로 구한 세입자들은 기존 계약을 연장한 세입자보다 보증금으로 평균 1억4000만 원을 더 지출했다.
이 같은 신규 계약 전세가는 2년 전 전세가보다 30% 이상 오른 것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의 2년 전 대비 상승률이 2018년 3.8%, 2019년 2.0%, 2020년 3.7%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세입자의 계약 갱신 요구를 염두에 두고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 때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면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세입자와 집주인이 기존 계약을 갱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파트는 3만5963채였다. 이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2년 전 4억1418만 원에서 갱신 후 4억3137만 원으로 4.2% 상승했다. 신규 전세 아파트 보증금이 갱신 계약 보증금보다 1억3738만 원(31.8%) 비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서울 100대 아파트 단지의 계약 갱신율이 77.7%라며 임대차법이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본보 분석 결과 서울 아파트 전세 중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가 인상률이 5% 이내인 계약 사례는 59.9%였다. 세입자 10명 중 6명꼴은 임대차법의 혜택을 누린 반면 나머지(40.1%)는 신규 계약으로 전세 가격이 급등해 불이익을 받은 셈이다.
갱신 전셋값 4% 오를때 신규 계약 30% 급등… 임대차법 부작용
서울 아파트 6만채 거래 전수조사이 단지에는 새로 전셋집을 구하려는 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임대차법 도입 전에는 전용 50m² 전세를 1억 원대 중반에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3억 원 가까이 줘야 한다.
○ 신규 전세 30% 넘게 상승… ‘5% 룰’ 적용 안 돼
동아일보는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과 함께 임대차법 시행 전(2018년 1월∼2020년 7월)과 시행 후(2020년 8월∼올해 7월) 거래가 이뤄진 서울 아파트 5만9989채를 전수 조사했다. 임대차법 도입 이후 전세가 상승률이 5%를 넘는 계약을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은 신규 계약으로 본 반면 5% 이내인 계약을 갱신 계약으로 보고 분석한 것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임대차법 도입 이후 신규로 거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파트의 전세가는 2년 전보다 30.4% 올랐다. 기존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 전세가 상승률이 4.2%인 반면 임대차법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신규 계약의 전세가는 법정 상한(5%)의 6배 수준으로 뛴 것이다. 한 단지 내 전세가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이중 가격’ 현상의 원인을 알 수 있다.
신규 전세 아파트의 보증금 상승률은 과거 전세난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서울 아파트 전세가가 가장 크게 오른 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 매매시장이 침체되면서 전세 수요가 폭증했던 2011년으로 당시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2년 전보다 24.3% 올랐다.
○ 마음 급한 세입자, 급등한 가격도 감수
현장에서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이 체감하는 가격 차이는 훨씬 크다. 요즘처럼 전세 수요가 늘어 전세 품귀 현상이 심해지면 수요자들은 급등한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계약을 서두르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전용 84.9m²짜리 전세는 전세난이 한창 극심했던 지난해 10월 역대 가장 비싼 10억 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의 2년 전 전세가는 7억 원이었다.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들이면서 임대차법 시행 후 급등한 시세에 맞춰 가격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세 수요가 잦아들면서 신규 계약 시 전세가가 7억∼8억 원대로 떨어졌다가 최근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다시 오르고 있다. 지난달 19일 올해 최고가인 9억5000만 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현재 호가는 12억 원까지 치솟았다. 3658채 규모인 이 단지의 전세 매물은 현재 34건으로 올 5월(103건)의 30% 수준이다. 같은 면적인데도 기존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요구한 경우 5억 원대에서 꾸준히 재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사철마다 신규 계약 시 전세가가 급등하는 부작용이 반복될 것”이라며 “계약 갱신을 요구해 전세난을 피한 세입자들도 2년 뒤 새로 전세를 구해야 하는 만큼 급등한 전세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계약 갱신 요구는 1번만 가능하다. 지난해 7월 이후 임대차법의 보호를 받아 시세보다 싸게 2년 더 거주를 보장받은 세입자들도 내년 8월 이후에는 전세가를 시세대로 올려줘야 한다. 지금 신규 계약 시 전세가가 나중에는 시세로 굳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은 셈이다.
계약 형태에 따라 전세가 격차가 커지는 부작용을 막으려면 전세 물량이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 하지만 당장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463채로 올해(3만8340채)보다 1만 채가량 줄어든다. 2023년 입주 예정 물량도 2만1502채 수준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전세 대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매매 시장과 달리 임대차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가 늘어야 한다”며 “임대차법 개정 없이는 3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세난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저가 많은 강북-관악-성동, 임대차법 보호는 적게 받아
젊은층 전셋집 수요 많은 지역… 10채중 4채 ‘5% 상한’ 이상 올라정부, 서울 전체서 100곳 조사한뒤… “갱신율 77.7%로 안정 기여” 자찬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전세 계약이 이뤄진 서울 아파트 10채 중 4채는 전세보증금 인상률이 법정 상한선인 5%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세입자는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통해 보증금 인상률을 5% 이내로 낮출 수 있었던 반면에 요구권이 없는 신규 계약의 전세금 부담은 더 커진 셈이다.
2일 동아일보가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대차법 시행 후 1년간(2020년 8월∼2021년 7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에서 보증금이 직전 계약보다 5% 넘게 오른 거래는 전체 5만9989건 중 2만4026건(40.1%)이었다. 전세가 인상률이 5% 초과인 전세 비중은 강북구가 46.4%로 가장 높았다. 이어 관악(43.8%) 성동(42.6%) 성북(42.4%) 동대문·도봉구(41.8%)의 차례였다. 중저가 전세가 상대적으로 많고 직장과의 거리 때문에 세입자들이 선호하는 지역들이다. 20, 30대가 새로 전셋집을 찾는 수요가 많아 신규 계약을 하며 전월세 상한제 적용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임대차 3법이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며 전월세 계약 갱신율이 높아졌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법 시행 전 1년간 57.2%였던 갱신율이 법 시행 이후인 올 5월 77.7%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울 25개 구에서 총 100개 단지만 조사한 수치다. 집주인과 협의해 보증금을 5% 이상 올리거나 월세를 추가했을 수 있는 만큼 계약 갱신율만 높다고 세입자 권리가 보호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는 6월 서울 전세 갱신 계약 중 77.4%가 임대료를 5% 미만으로 인상했다고도 했다. 이는 오피스텔, 원룸, 다세대 등을 포괄한 통계다. 비(非)아파트는 수요 감소로 아파트에 비해 상승률이 낮은 편이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