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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메이트로 보는 여자배구 ‘꿀 케미’[강홍구의 터치네트]

입력 | 2021-08-03 18:24:00


45년 만의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여자배구 대표팀이 4일 대망의 8강전을 펼친다. 이날 오전 9시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터키와 맞붙는다. 5세트 12-14 열세를 뒤집은 한일전 승리는 2020 도쿄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선전의 비결로 선수들이 꼽는 건 늘 ‘팀워크’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도 “선수들이 자매 같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고 말할 정도다. 주장 김연경도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분위기를 잘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여자배구 팀워크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보내는 선수촌 룸메이트만 봐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통상 연차가 높은 순서대로 방장이 되어 함께 방을 쓸 룸메이트를 정한다. 그런데 여자배구 대표팀엔 예전부터 이어오던 암묵적인 룰이 있다. 통상 같은 구단 선수들끼리는 룸메이트가 되지 않는 것이다. 대표팀 소집 기간만큼 평소 자주 보지 못했던 다른 팀 선수들과 가까워지라는 의미다. 실제로 현재 2020 도쿄올림픽 대표팀 12명은 총 5개 방(2인실 3개, 3인실 2개)에 나눠 생활하고 있는데 이 중에 같은 팀 동료와 한 방을 쓰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고참 센터 김수지(34·IBK기업은행)는 올림픽 무대가 처음인 세터 안혜진(23·GS칼텍스)과 룸메이트다. “함께 방을 써본 적도 없고 혜진이가 워낙 밝으니까 룸메이트를 해보고 싶었다”는 게 김수지의 설명. 주전 세터 염혜선(30·KGC인삼공사)은 라이트 김희진(30·IBK기업은행)과 한 방을 쓴다. 세터와 라이트의 호흡은 팀 공격을 풀어가는 데 중요한 열쇠다. 염혜선은 “같은 1991년생이긴 하지만 2월 생일인 내가 엄연히 선배”라며 웃고는 “다른 것보다 ‘우리 둘이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포지션 선수끼리 룸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에도 라이트 황연주와 김희진이 한 방을 썼다. 이번에도 양효진(32·현대건설)은 레프트 박정아(28·한국도로공사) 외에도 같은 센터 포지션의 박은진(22·KGC인삼공사)과 룸메이트다. 양효진은 VNL 때도 박은진과 룸메이트였다. 애초 이번 대회 여자배구 대표팀은 4인 1실도 쓸 계획이었으나 방에 여유가 생기면서 적게는 둘, 많게는 셋이 한 방을 쓰게 된다. 나머지 3인실은 오지영(33·GS칼텍스), 이소영(27·KGC인삼공사), 정지윤(20·현대건설)이 쓴다. 공교롭게 세 선수 모두 첫 올림픽이다. 막내 정지윤은 ”AVC 컵 빼고 이렇게 큰 대회를 나와 본 적이 없는데 경험하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주장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은 표승주(29·IBK기업은행)와 한 방을 쓰고 있다. 팀이 다르면서 포지션(레프트)이 같다는 불문율 아닌 불문율을 모두 지키고 있다. 전속(?) 룸메이트였던 양효진이 어느덧 대표팀에서 어엿한 고참이 됐으니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후문이다. 김연경의 한일전산여고 후배인 표승주는 그를 믿고 따르는 후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값진 기억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앞서 지난달 23일 개회식에서는 한국 선수단 공동 기수인 김연경의 뒤를 이어 개회식 무대를 밟기도 했다. 4일 예정된 터키와의 8강전에서 승리를 따낼 경우 그 기억들을 더 길게 만들어나갈 기회를 얻는다. 운명의 시간이 이제 곧 다가온다.

도쿄=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