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으로 보이는 평양의 젊은 남녀가 고급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속삭이고 있다. 사진 출처 하쓰자와 아리 사진집 ‘이웃사람’
주성하 기자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 여성이 장마당에 나가고, 집에 돌아와 밥하고, 애 보고, 청소도 도맡아 할 동안 남자는 까딱도 하지 않는 집이 많았다. 돈 버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이젠 청소 정도는 하는 남성도 늘었지만, 그래도 여성은 여전히 무시당한다.
예전에 중국에서 똑같은 사회주의 제도인데도 문화가 너무 달라 충격을 받았다. 많은 중국 남성들이 장보고, 요리하고, 애 보고, 빨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가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도 더 컸다.
북한 남성이 큰소리치는 중요한 이유는 남녀 성비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김정은에게 보고되는 진짜 북한 인구통계를 2년 전 입수했다. 통계에 따르면 북한이 발표하는 인구 2500만 명은 가짜였다. 실제는 2000만 명이 좀 넘었다.
북한 성비(여성 100명당 남성 숫자)는 매우 충격적이다. 북한 인구 중 남성은 45%도 안 됐고, 여성은 55%가 넘었다. 가장 최근의 성비는 80.9에 그쳤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 남성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리스트에서 압도적 1위다.
중국은 북한과 정반대의 성비 구조다. 중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성비는 105.3이지만 젊은층으로 갈수록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다. 25∼29세는 106.7, 20∼24세는 114.6, 15∼19세는 118.4까지 치솟는다. 1가구 1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남자아이만 선호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남성 12명 중 1, 2명은 결혼할 짝을 찾을 수 없고, 중국 전체로 보면 남성 4000만 명이 짝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중국 남성은 결혼하려면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여성 10명 중 2명이 짝을 찾지 못하는 북한은 중국과 상황이 정반대다. 더구나 북한 여성은 결혼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하다. 요즘 한국엔 혼자 살겠다는 여성이 늘어나지만 북한에선 결혼해 애가 없으면 모자란 여성 취급을 당한다. 결혼을 하려면 여성들끼리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반면 남자는 다소 모자라도 장가는 쉽게 갈 수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성비 불균형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이다. 1980년 남성 비율이 46%가 넘었는데 2008년부터 44%대로 떨어졌다. 북한은 남성으로 살기엔 최악의 환경이다. 남성은 17세 때부터 10년씩이나 군에 가서 안전 장비도 없는 각종 위험한 공사판에 동원돼 무리로 죽어가고, 사회에서도 각종 동원에 더 많이 시달린다. 또 보드카 때문에 남성이 빨리 죽기로 유명한 러시아처럼 술도 엄청 마셔대며, 의료 환경도 뒤떨어졌다. 그러니 여성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빨리 죽는 북한 남성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끝으로 탈북여성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친구들에겐 빨리 꿈에서 깨라고 하고 싶다. 2021년 한국의 성비는 100.4. 한국에 온 탈북여성은 더 이상 결혼 시장에서 경쟁할 필요가 없다. 최악의 환경이지만 그래도 큰소리치며 살다가 갑자기 경쟁사회의 맨 밑바닥에 떨어져 어리둥절해진 탈북남성만 불쌍할 따름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