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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가 아직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 이유[김도형 기자의 일편車심]

입력 | 2021-08-06 03:00:00


김도형 기자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하겠다고 외치는 자동차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엔 메르세데스벤츠가 2025년부터 새 모델은 모두 전기차로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볼보도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100%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머지않은 미래에 전기차가 전 세계의 도로를 장악할 것 같은 움직임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금 전 세계에서 운행 중인 자동차는 15억 대쯤 된다. 지난해 순수 전기차 판매는 200만 대를 조금 넘겼다. 보급 속도가 더 빨라져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모두 대체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전환 속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기차는 전기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이 큰 제약이 될 수 있다. 전기차는 잘 갖춰진 전력 시스템을 요구한다. 한국 같은 나라라면 큰 문제가 없다. 2030년 전기차 300만 대 보급 계획을 세운 한국은 그에 걸맞은 전력 인프라를 준비할 능력과 자원이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의 상황은 다르다. 전기차 충전을 위한 인프라와 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이 모두 열악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15억 대 자동차 가운데 7억 대 가까운 차량이 아시아와 남미, 중동 등 이른바 신흥시장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신흥시장에는 여전히 ‘가성비’ 좋은 내연기관차를 선호하는 지역이 많다. 충전 인프라도 부족한 이런 지역에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전기차를 보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전기차가 결국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점도 봐야 한다. 2030년 국내에 300만 대의 전기차가 보급됐을 때 충전을 위한 주발전원은 석탄화력과 원자력 순서일 것으로 분석된다.

탄소 배출 문제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유리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전기차 비중이 점차 커져 충전을 위한 전력 생산에 더 많은 화석연료가 필요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장기적으로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전기차 등의 공존이 최적의 대안일 수 있다.

최근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라는 기술이 주목받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기로 주행하지만 배터리 충전에 내연기관을 쓰는 기술이다. 충전 역할만 해주면 되기 때문에 회전수를 고정할 수 있는 엔진 기술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충전 인프라로 인한 제약은 전기차보다 훨씬 작다.

볼보나 메르세데스벤츠처럼 비싼 차를 파는 자동차 기업이 완전한 전기차 전환을 외치고 있다는 점에도 힌트는 있다. 볼보는 연간 100만 대에 못 미치는 차를 판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판매량도 200만 대를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들 브랜드의 주요 시장은 전기차 보급이 활발한 지역이다.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차를 생산해 더욱 다양한 지역에서 판매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도요타 같은 대중 브랜드는 꽤 먼 미래에도 여전히 많은 양의 내연기관차가 판매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