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아름다운 경선’ 만들기 더 위험
마타도어 걸러낼 유권자 역량 신뢰를

길진균 정치부장
‘위태위태한 경선’이라고 한다. 누가 이겨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선을 바라보는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후보들을 향해 ‘아름다운 경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지층의 걱정에도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후보는 전면전에 돌입했다. 예비경선 때 방어 모드를 취했던 이 지사가 공세로 전환하면서 두 후보는 연일 충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만의 이슈가 아니다. 국민의힘에도 조만간 닥칠 문제다. 이달 말 국민의힘 경선이 공식 출발하는 순간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 등 당내 기존 주자들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후보를 향해 검증을 앞세운 공격을 본격화할 태세다.
지지자들에겐 아군 사이에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공방이 위태로워 보일 것이다. 진영을 향한 로열티가 강할수록 ‘아름다운 경선’에 대한 절박함도 클 수밖에 없다. 그들은 후보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범위에서, 경선 흥행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딱 그 정도 수준의 공방을 원한다. 그래야 정권 재창출 또는 정권 교체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꿈일 뿐이다. ‘아름다운 경선’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 후보 캠프에 참여한 한 인사는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다. 권력의지가 어지간히 강하지 않은 사람은 대선판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인사들이 모여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각자의 인생을 걸고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 경선이고 대선이다. “후보자로서 품위와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등의 원팀협약식 선서는 지지층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는 DNA 검사까지 받았다. 이 후보가 이복 아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절차였다. 박근혜 후보도 “나에게 애가 있다는 얘기까지 있다. DNA 검사도 해주겠다”고 했다. 경선은 본선과 나아가 대통령 당선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에 대한 리스크를 줄여가는 과정 중 하나다. 치열하고 혹독할수록 유권자들에게는 더 많은 판단의 근거가 쌓인다.
양당 모두 후보 간 검증 공방의 길을 아예 확 터주는 건 어떨까. 다소 과격한 발언이 오가더라도, 인신모독이나 마타도어 등 수준 이하의 언행은 지금까지 대한민국과 시민들이 쌓아온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한 축적된 역량으로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고 본다. 허위 또는 조작이 드러나면 후보 본인에게 더 무거운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과 일부 지지자들이 원하는 인위적인 ‘아름다운 경선’ 만들기는 대한민국의 리스크를 더 키울 수 있다. ‘혹독한 경선’을 치르고 판단은 유권자에게 맡기면 된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