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제국, 프리미어리그/조슈아 로빈슨, 조너선 클레그 지음·황금진 옮김/552쪽·2만2000원·워터베어프레스
축구팬이라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잠에서 깬 적이 있을 것이다. 치열한 순위 싸움은 응원하는 구단의 경기를 놓칠 수 없게 한다. 짜릿한 골 장면은 피곤함을 잊게 만든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유럽 스포츠 담당 기자와 편집자인 저자들은 10년간의 EPL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EPL이 어떻게 212개 나라에서 방영될 만큼 성공한 산업이 됐는지를 보여준다. EPL 출범 전까지 영국에서 축구는 사양산업으로 여겨졌고, 구단들은 입장료라는 주 수입원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TV 중계를 반대했다. 성공의 발단은 모순적이게도 구단들의 재정난이었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1989년 4월 힐스버러 스타디움의 입석 구역에 수용 인원을 초과하는 관중이 입장하며 96명이 압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부는 관중이 많은 영국 리그 상위 구단에 전석 좌석제 경기장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경기장 개조 비용이라는 부담을 안게 된 상위 22개 구단은 영국 리그에서 탈퇴한 후 TV 중계료, 광고 수익, 기업 후원 등의 이익을 위해 1991년 EPL을 출범시켰다.
이후 EPL의 각 구단은 그들만의 경영 전략을 세워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구단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주식을 공모해 자금을 모았다. 아스널은 시즌권 평생 갱신권을 일시불로 판매하는 제도를 도입해 재정을 늘려갔다. 토트넘 홋스퍼는 유망한 어린 선수를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재정을 불렸다.
하지만 세계화와 EPL의 성공이 새로운 위기를 낳았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구단과 연고지와의 유대는 그저 구단이 지역 사회에 자금을 투자하는 것에 그쳤고, EPL 상위 구단들은 작은 구단들과 수익을 분배해야 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PL의 시작과 현재를 들여다보며 위기가 부른 성공, 성공 너머 도사리고 있는 위기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