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政說] 올드보이 리그 흥행 실패 지름길… 李, 연금술사 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홍중식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취임 후 50일이 지났다. 최우선 과업은 차기 대선 승리 구도를 만드는 일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입당시켰다. 대단한 성과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제2 이준석’ 만들기다.
찻잔 속 태풍 된 이준석 바람
이 대표 당선 직후 차기 대선 구도가 요동칠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았다.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 젊고 참신한 외부 인사들이 ‘제2 이준석’을 노리며 참가해 전체 대선 구도를 뒤흔들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이 대표가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 이러한 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대표에게서는 세대교체에 대한 어떤 기미도 느낄 수 없다. 몰라서 안 하는 걸까, 알고도 외면하는 걸까. 수재에 순발력까지 뛰어난 이 대표가 몰라서 안 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차고 넘치는 대선주자를 관리하고 엮어내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넋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신을 당대표로 만든 국민적 여망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대선 경선을 진행 중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간 설전으로 당내 분위기는 후끈하지만 정작 국민은 냉담하다. 흥행 관점에서 실패한 경선이다. 설전조차 없었다면 관심은 더 적었을 것이다. 민주당 경선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참신한 외부 인사가 참여하지 않아서다. 이준석류(類)의 인물이 도전장을 내밀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테다.
이 대표의 행보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와도 사뭇 다르다. 김 전 위원장은 재임 기간 내내 ‘1970년대생 경제 전문가’를 주문처럼 외고 다녔다. 성사되지 않았지만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찾아가 영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이런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뭘까. 젊은 인물로 선수를 교체해야 보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서다. 이 대표의 정치력이 김 전 위원장을 능가할 수는 없겠지만, 80대 김 전 위원장도 감지한 변화의 불가역성을 30대 이 대표가 느끼지 못했다면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현 흐름이라면 국민의힘 당내 경선도 민주당처럼 ‘올드보이 리그’가 될 개연성이 크다. 경력이 화려한 올드보이들의 위세에 눌려 참신한 외부 인사는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란 이야기다. 변화라는 관점에서는 물론, 흥행이라는 관점에서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힘과 이 대표가 ‘이번에는 어떻게 하더라도 정권교체가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6월 29일 서울 시내 한 한식당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혁명하라고 당대표 세웠는데…
이 대표가 차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다. 7월 16일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당대표 직무에 성공하면 여러 가능성이 생길 것이지만 서두를 생각은 전혀 없다”며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차차기 대선 출마를 고려한다면 자신과 비슷한 유의 대선주자 등장이 반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이유로 인재 영입에 소극적이라면 이는 민심에 맞서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다시 묻는다. 도대체 누가, 어떤 여론의 흐름이 이준석을 당대표로 만들어냈는가. “보수도 뼛속까지 변해야 한다” “세대교체가 필수다” 등의 민심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이 같은 여론이 이 대표 본인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오다. 이 대표는 국민이 선택할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대표는 지금이라도 자신을 당대표로 만들어준 여론의 흐름을 타야 한다. 부지런히 ‘제2 이준석’ ‘제3 이준석’을 발굴해야 한다. 당내 경선에 더 많은 이준석들이 도전장을 내밀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또 이들을 영입하는 데 열성을 다해야 한다. 혁명하라고 당대표로 세웠는데 일상을 관리하는 데만 여념이 없다면, 국민은 대안을 찾아 나설 것이 분명하다. 변화 아이콘으로서 이 대표가 빛을 잃는 순간이다.
역사는 이 대표를 어떻게 기록할까. 보수 정당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뒤바꾼 연금술사로 기록할까, 아니면 국민적 여망을 기득권과 바꿔 먹은 허무개그의 달인으로 기록할까. 이 대표에게 당대표직은 기회이자 위기다. 유리한 환경에서 정권 창출에 실패한다면 향후 정치 가도도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차차기 대선 도전 계획도 무산되고 말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8월 말 국민의힘 당내 경선후보 등록이 끝난다.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결연한 각오로 인재 영입에 집중할 때다. 머뭇거리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기회를 채갈지 모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제3지대에 묶어두려던 계획이 무산된 지금, 김 전 위원장은 더 획기적 인물을 내세워서라도 외연 확대를 도모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후보로 야권 단일화가 이뤄지면 이 대표는 의문의 1패만 맞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1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