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경찰, 대북보고문 확보
“北, 작년 총선 앞두고 ‘여야 동향 파악하라’ 지령… 스텔스기 반대 일당, 민주당 인사 면담뒤 보고”
스텔스전투기 F-35A 도입 반대 운동을 한 충북 청주지역 활동가 4명이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약 2개월 앞둔 지난해 2월 ‘여야 세력들의 동향과 움직임 등을 보고하라’ 등 북한의 대남공작부서 문화교류국(옛 225국)의 지령을 받은 사실이 8일 밝혀졌다.전위 지하조직을 결성하라는 북측의 지령을 받고 2017년 8월 결성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의 위원장 손모 씨(47)와 부위원장인 윤모 씨(50·여·수감 중) 등은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간부 A 씨와 면담한 뒤 그 내용을 북측에 보고했다. 윤 씨 등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F-35A 도입 반대 관련 정책연대는 어렵지만 남북 교류 협력의 정책 협약은 가능하다고 한다. (민주당 충북도당의) B 의원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대북보고문을 확보했다.
지난해 4월 “청주지역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들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 낙선시키고,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미래한국당을 적폐 정당으로 낙인시켜 지지율을 하락시키기 위한 선전전을 기본으로 전개하라”는 지령도 받았다. 윤 씨 등은 2018년 12월 민중당 간부 여러 명을 포섭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이 간부들의 휴대전화 번호와 경력, 사상 등을 정리해 북측에 보고했다.
“스텔스기 반대 일당, 4년간 北과 ‘지령-보고’ 84건 주고받았다”
구속영장에 상세한 ‘활동 내역’ 담겨“(21대) 총선 투쟁 계획을 현실성 있게 작성하여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보고해주기 바란다.”(북한 대남공작부서 문화교류국의 지령)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간부를 만나 논의를 진행했다. 민주당 ○○○ 의원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자주통일 충북동지회’ 대북보고문)
8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구속영장에는 이들이 북한 문화교류국의 공작원과 주고받은 지령문과 대북보고서 내용이 상세하게 담겼다. 구속영장 청구 당시 국가정보원 등이 확보한 북한의 지령문과 대북보고문은 총 84건이었다. 국정원 등은 활동가들이 국내 정치에 개입했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이들은 2017년 6월경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의 설립을 준비하면서 북한 문화교류국과 지령 및 대북보고문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단체 고문 역할을 한 박모 씨(57·수감 중)는 2017년 5월 중국으로 출국해 북한 공작원과 만난 직후부터 단체 설립을 준비했다. 박 씨 등 4명은 같은 해 8월에 결성식을 가진 뒤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 혈서 맹세문’을 작성해 공작원에게 보냈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원수님과 함께”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자”는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이 단체를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위해 설립된 지하 전위조직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2018년 2월에는 지령문을 보내 박 씨 등 4명의 ‘임무’를 알렸다. 고문인 박 씨는 구성원들에 대한 사상 교육을, 위원장인 손모 씨(47·불구속)는 근무하던 대기업 계열사의 노동조합을 포섭하는 역할을, 부위원장인 윤모 씨(50·여·수감 중)는 민중당에 입당해 포섭 작업을, 연락책인 박모 씨(50·여·수감 중)는 간호사 이력을 살려 간호사당을 규합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주로 ‘반(反)보수 운동’을 벌이라는 지령을 받은 뒤 매달 이행 상황을 북한에 보고했다. 이들은 “분노한 민중을 반일 민중항쟁으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활동을 조직하라”는 지령에 “반일 불매운동센터를 내세워 종교 시민운동단체를 반보수 촛불집회에 합류시키기 위한 내적 공작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검찰개혁안을 비롯한 개혁 법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시키려는 보수 패당의 책동을 분쇄하고…”라는 지령에는 “‘사법적폐청산 검찰개혁 시민연대’를 1월 중순까지 결성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의 ‘아이 낳는 도구’ 등 여성 비하 발언을 걸고 천하의 저질 당으로 각인시켜 지역 여성들의 혐오감을 증대시키기 위한 활동을 조직하라”는 지령도 내렸다.
북한은 2018년 12월부터 민중당 소속 간부 등을 지목해 “포섭하라”고 지령을 내렸다. 이들 4명은 포섭 대상이 된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와 정치사상, 포섭 가능성 등을 문건으로 정리해 공작원에게 보냈다. 포섭 대상은 민중당 간부, 충북지역 변호사 등을 포함해 6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들이 북한으로부터 2017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활동비’를 받아 왔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2017년 5, 6월 인천공항과 경기 평택 등에서 5000달러를 환전했고 2018년 6∼8월에도 서울 명동 환전소에서 2만300달러를 원화로 바꿨다. 이들이 중국, 캄보디아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난 직후의 일이었다. 국정원은 이들이 2019년 11월 중국 선양의 한 마트 무인함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2만 달러를 수수한 사실을 파악한 상태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