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을 한 채 가파르게 처리된 어깨선, 정면을 응시한 모습이 마치 구도자를 떠올리게 하는 ‘자소상’(1967년 작, 테라코타, 35×23×20cm)과 왼손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 ‘손’(1963년 작, 테라코타, 52×28×15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1973년 5월 어느 저녁나절. 51세의 독신남이던 그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외롭게 이승을 하직했다. 흔적도 남기지 말라 했는데 그의 시신은 망우리공동묘지(지금의 망우묘지공원)에 지금도 남아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전시장에서 그와 인사를 한 바 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 그 무덤 앞에서 침묵으로 망자와 만나게 됐다. 묘비명은 권진규(1922∼1973). 지금 미술계에서 그의 이름은 뜨겁다. 사후에야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권진규는 6·25전쟁 시기 일본 유학을 한 특이한 경력의 작가다. 2009년 그의 모교인 무사시노미술대학은 개교 80주년 기념행사로 권진규를 선정해 재조명했다. 이때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은 회고전을 공동 주최했다. 한일 양국이 함께 권진규를 주목하고 대대적으로 기리는 사업을 펼쳤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권진규는 자신을 모델로 한 자소상을 여럿 만들었다. 이 역시 ‘권진규 스타일’대로 다소 무거운 표정이다. 대개 자존감이 강한 화가들은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내면세계로의 침잠, 사유형 작가의 또 다른 변주라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일까’ 끝없이 되묻는 질문. 자신의 얼굴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고자 한 작업이다. 이 얼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얼을 담는 꼴’, 바로 얼굴, 과연 누구의 것인가. 스스로 경책하는 행위로서의 자화상 그리기. 그는 왜 자소상을 많이 만들었을까. 왜 여성 모델 작품이나 자소상이나 같은 형식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려 했을까. 이는 바로 구도의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인 건칠 기법이 돋보이는 부조 작품 ‘곡마단’(1966년 작, 건칠, 91.5×91.5×2.8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일생에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세기의 기증품 가운데 명품을 선정해 공개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주옥같은 작품 가운데 ‘자소상’(1967년) 등 권진규의 작품 6점도 있다. ‘자소상’은 권진규 특유의 흉상 형식을 갖춘 테라코타 작품이다. 삭발한 두상에 엄숙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손’(1963년)은 왼손을 해부학적 접근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활짝 편 손바닥, 하늘을 향하여 우뚝 세운 손, 상징성이 큰 형상이다. 이외 출품작은 채색 평면의 부조 작품이다. ‘코메디’(1967년)는 해학적 인체 표현으로, ‘곡마단’(1966년)은 전통적 건칠 기법의 작품으로 조형성이 뛰어나 눈길을 끈다. 이번 이건희컬렉션 기증품 1488점 중 권진규 작품은 31점이나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존 소장품 조각 24점과 드로잉을 합친다면 총 60점가량이나 된다. 권진규 개인전을 꾸릴 수 있을 수준이다. 미술관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권진규의 작품은 뜨거운 침묵 속 내면세계와 구원의 구도자를 만날 수 있게 한다. 어깨의 힘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의 무게조차 버거워 내려놓은 모습, 감동적이다. ‘자소상’은 다시 한 번 자문하게 한다. 진정 나는 누구일까.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