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폭염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의 건강과 안녕이 걱정되는 차에 자꾸 떠오르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눈 쌓인 벌판을 헤치듯 걸어 나가 먼 산을 향해 “오겐키데스카? 와타시와 겐키데스(잘 지내나요? 난 잘 지냅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 속 장면이다.
‘러브 레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첫 장편영화인데 자국 일본에서 1995년에 개봉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이후인 1999년에 처음 개봉했다. 시노다 노보루 촬영 감독은 영화의 설원 장면을 비롯해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과 감정들까지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았고, 레메디오스가 영화음악을 맡아 향수에 젖은 애틋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담백하게 풍기도록 했다. 사실 1999년 정식 개봉 전에도 대학가에선 특별상영 등으로 열성 팬을 이미 끌어모았던 터. 그럼에도 극장 개봉 후 큰 화면과 제대로 된 음향 시설을 갖추고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은 속속 영화관을 찾았다. 이 작품은 그 후로 또 여러 차례 재개봉할 정도로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2년 전 친구들과 등산을 하다가 조난을 당한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추모식으로 시작된다.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추모식이 끝나고 이츠키 어머니와 함께 집에 가서 졸업앨범을 보다가 지금은 그 자리에 도로가 생겨 사라졌다는 옛날 집 주소를 적어온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버린 연인을 향한 마음으로 짧은 편지를 적어 보낸다.
여자 이츠키의 사진을 찾아본 히로코는 그 모습이 본인과 닮은 것을 깨닫는다. 그는 혹시 애인이 자기를 좋아했던 진짜 이유가 중학교 시절 동명이인인 이츠키가 첫사랑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회의한다. 영화에서는 실제로 나카야마 미호가 히로코와 성인이 된 여자 이츠키 역을 맡았다. 다르면서도 같은 두 여자는 이 과정에서 각각 과거에 몰랐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면서 아물지 않았던 상처를 치유받는다.
폭염과 팬데믹 속에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눈과 햇살이 찬란한 추억의 첫사랑 영화를 추천한다.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