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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 아니다”[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

입력 | 2021-08-11 03:00:00


어떻게든 세상을 밝게 보려는 작가들이 있다. 심지어 다른 작가의 말을 오독해서라도 밝은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작가들이 있다. 2021년 세상을 떠난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가 그러했다.

그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오독한다. 구체적으로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 말미에 나오는 “타인은 지옥”이라는 대사를 오독한다. ‘닫힌 방’은 대충 이런 내용이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 등장한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지옥에 가면 생전에 지은 죄에 합당한 고문과 유황불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방 하나만 덜렁 있다. 조건은 그들이 그 방에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사적인 공간도 없고 서로의 과거와 생각은 발가벗겨진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에 서로의 포로가 된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이 말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망가지면 타인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인간에 대한 혐오적인 발언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자가예프스키는 ‘타인들이 창조한 아름다움에’라는 시에서 사르트르의 말을 뒤집는다. “타인들이 창조한 아름다움에만/타인의 음악과 타인의 시에만/위안이 있다./고독이 아편 같은 맛이라 해도/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시인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나온 앞뒤 문맥을 싹둑 자르고 사르트르의 말을 뒤집어 버린다. 물론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사에 지친 우리가 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을 듣고 시를 읽으며 이따금, 늘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위로를 받는 것은 사실이니까.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바를 몰랐을 리 없지만, 시인은 오독해서라도 밝은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본래 의미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예술은 때때로 오독, 그것도 아주 의도적인 오독의 산물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