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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이혼 중요한 순간 도장 찍고 싶다” 스가 내각 ‘脫도장’, 여론 반대에 후퇴

입력 | 2021-08-11 03:00:00

日, 내달 행정 문서서 도장 없애기로
반대 쇄도에 희망자엔 다시 허용




“옛날부터 중요한 서류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도장을 찍게 돼 있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던 ‘탈(脫)도장’ 정책이 적지 않은 반대 때문에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 어렵게 됐다. 스가 내각은 올해 5월 이른바 ‘디지털 개혁법’을 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고 9월부터는 거의 모든 행정문서에서 도장 찍는 칸이 사라지도록 했다. 스가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일본 사회의 낡은 관습을 뜯어고치겠다고 선언했는데 혼인 및 이혼 신고서, 호적 관계 문서 등에 도장을 찍는 날인 제도가 가장 먼저 꼽혔다.

스가 총리가 탈도장 정책을 추진하게 된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재택근무 증가도 하나의 계기가 됐다. 전자서명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회사의 직원들이 단지 결재 도장을 받기 위해서 사무실로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도쿄상공리서치가 1만1129개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도장 날인제도가 재택근무에 방해가 된다는 응답이 43%나 됐다.

법무성은 최근 날인제도를 일부 되살리기로 했다. 행정문서에 도장 찍기를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계속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NHK,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옛날부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도장을 찍도록 돼 있다”, “인생의 출발에는 도장을 찍는 것이 메이지 시대의 관습이다”라는 등 ‘탈도장’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일본 내 최대 도장 생산지역인 야마나시현 의회에선 ‘도장제도 유지’를 요구하며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법무성은 희망자에 한해서는 도장을 계속 찍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행정명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각료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에 각료들이 붓으로 사인을 하는 일명 ‘가오(花押)’도 폐지 대상에서 살아남았다. 요미우리신문은 “탈도장 움직임 속에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 무대에서 ‘일본 전통’의 숨결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