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참전 美 한인 활약상, 장태한 교수 논문 통해 드러나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 항공모함 벙커힐이 일본군 가미카제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미국 국립기록보관소 제공
1944년 6월 6일 0시,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상공. C-47 수송기에 타고 있던 한 남자가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 군의관인 한인 2세 프랭크 최(Frank Choy·당시 31세)였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의대를 마치고 레지던트로 일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군에 배치됐다. 약 1년간 의무대에서 훈련을 받은 뒤 공수부대에 자원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낙하산을 편 그와 부대원들은 목표 지점에 착륙하지 못했다. 소 목장에 떨어진 그는 수류탄과 금속제 피아 식별기를 손에 쥐고 다급히 수풀로 몸을 숨겼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밤을 새우면서 훈련 내용을 계속 떠올렸다. ‘피아 식별기를 한 번 눌렀을 때 건너편에서 두 번 누르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곳으로 수류탄을 던져라.’ 새벽녘 다른 부대원들과 합류해 농가에 숨어든 그는 연합군 부대의 상륙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수행했다. 2002년 사망한 그는 회고록에 “수송기를 타고 노르망디로 이동할 때 대공포의 섬광이 활활 타오르던 모습이 생생하다. 50구경 기관총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고 긴박한 순간을 남겼다.
논문에서 다룬 참전용사 중 유일한 생존자인 레이몬드 조 (Raymond Cho·97)는 태평양전쟁에 투입됐다. 미 육군 96보병사단 의무하사관으로 복무한 그는 스물한 살이던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부상병의 절반 이상이 수술 후 사망했다”며 당시의 참상을 회상했다. 그는 미 정부로부터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재미 한인은 미군 소속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딸 안수산 여사는 제2차 대전 당시 미군 포격술 장교로 복무했다. 장태한 교수 제공
장 교수는 “이들은 미군에 입대해 일본에 맞서는 것이 모국의 독립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며 “한인 참전용사들의 복무기록을 확보하기 어려운 데다 생존자가 적어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생존자들이 남아 있을 때 이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구술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