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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식 경제용어 사전[오늘과 내일/박중현]

입력 | 2021-08-12 03:00:00

‘자기 언어’ 고집하는 정치인
보편 상식 기초해 검증받아야



박중현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야 어느 대선주자와 맞붙어도 지지 않을 언쟁(言爭)능력을 갖췄다. 잇따른 ‘기본 시리즈’ 공약 발표나 대선주자 간 토론에서도 이런 능력이 드러난다. 특히 전문가들도 잘 사용하지 않는 경제용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특징이다. “뭔가 이상한데…” 하는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적지 않은데 바로 콕 집어 평하기가 쉽지 않다. 보편적 어의(語義)와 다르거나 다른 사실, 분석에 근거한 ‘이재명식 경제용어’여서 본뜻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용어들인데 사실관계, 전후맥락을 이해하려면 별도의 해설이 필요하다.

▽승수효과=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강조할 때마다 이 지사는 작년 5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 효과를 예로 들면서 “승수효과가 통계학적으로 증명됐다”고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푼 재정이 돌고 돌면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총효과, 즉 ‘재정승수’가 높다는 의미다. 이 지사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이 재난지원금 100만 원으로 그 1.85배인 185만 원의 소비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한 게 근거로 보인다. 반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분석한 소비효과는 0.26∼0.36배로 효과는 26만∼36만 원이었다. 중산층 이상이 원래 하려던 소비를 재난지원금으로 대신 쓰고, 자기 돈은 저축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국민에게 정부가 돈을 바로 쏴주는 ‘이전지출’의 경우 한국은행이 추산한 재정승수는 0.22배 수준으로 KDI 분석에 가깝다. ‘효과가 증명됐다’는 이 지사 주장은 정설이 아니다.

▽수요주도성장=이 지사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대비해 자신의 경제정책을 ‘수요주도성장’이라고 설명한다. 현금 나눠 주기의 수요창출효과가 뿌린 돈보다 크다고 봐서 기본소득을 ‘분배정책인 동시에 경제, 성장정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KDI 등의 분석대로 재정승수가 1.0배에 크게 못 미치면 기본소득을 성장정책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대로 이 지사 생각이 맞는다면 다른 경제정책은 필요가 없다. 세금을 걷었다가 나눠주기만 해도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적 없는 성장방식이다. 미래 세대가 나랏빚 갚느라 소비를 줄여 발생할 장래의 부작용도 고려에서 빠져 있다.

▽교정과세=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이 지사는 ‘교정과세’인 국토보유세를 도입하고 걷은 돈은 기본소득으로 전 국민에게 나눠 준다고 했다. 교정과세는 전문가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담배 술 도박같이 사회에 해악이 있는 소비에 물리는 ‘죄악세(Sin Tax)’나 환경오염을 억제하기 위해 물리는 휘발유세 등 ‘피구세(稅)’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과도한 부동산 보유를 징벌적 세금을 물려 교정(矯正)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 밖에 기본주택 100만 채 재원으로 제시한 ‘현대 금융기법’, 기본소득 지불수단으로 강조하는 ‘소멸성 지역화폐’ 등 이재명식 용어가 계속 늘어나는데 하나하나가 논란거리다. 최근엔 ‘오리너구리’가 추가됐다. “복지와 성장이 양립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며 오리와 너구리 양쪽 속성을 가진 오리너구리에 기본소득을 비유한 것이다. 날개 달린 박쥐가 조류가 아니듯 오리너구리도 포유류일 뿐이지만 정치 수사(修辭)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지사가 ‘네거티브 휴전’을 선언하고 정책대결에 집중하기로 했다면 “앞으로도 그냥 포퓰리즘을 하겠다”며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대신 국민과 전문가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정책들을 상식에 기초한 보편언어로 설명하고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