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마틴 스펜서 ‘어린 아내: 첫 번째 스튜’, 1854년.
새 신부가 생애 첫 스튜를 만들기 위해 부엌에서 양파를 까고 있다. 테이블 옆에는 손질할 채소가 잔뜩 쌓여 있고 냄비도 그리 크지 않은데, 계속 양파만 깐다. 어찌나 눈이 매운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가사도우미는 어리둥절해하며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신부는 왜 양파만 다듬고 있는 걸까? 호된 시집살이 중인 걸까?
릴리 마틴 스펜서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화가였다. 영국에서 태어나 8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독학으로 화가가 됐다. 19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땐, 천재가 탄생했다는 극찬까지 들었다. 스펜서는 유명인 초상화도 잘 그렸지만 행복한 가정생활을 그린 장르화에 특히 능했다.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30대 초에 완성한 이 그림은 ‘어린 남편: 첫 장보기’와 한 쌍으로 그려졌다. 비 오는 날 대책 없이 장을 본 새신랑은 손에 든 광주리에서 농산물이 쏟아져 바닥에 나뒹굴자 당황하고, 이를 본 행인들이 킥킥거리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지금 부엌에 있는 양파를 비롯한 각종 농산물은 남편의 무분별한 장보기 결과물이다. 수습하려는 아내 역시 어설프고 서투른 건 매한가지다. 어쩌면 부부는 일주일 내내 양파 요리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다 어렵다. 누구나 처음엔 서투른 법.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않을 것인가. 어렵지만 도전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가부장사회에서 전문직 여성 가장으로 살았던 스펜서가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