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지식전파 균형 요구되는 특허제도
국내 특허 다수, 인용되지 않는 ‘장롱 특허’
과도한 보호는 시장진입 막고 역동성 저해
보다 공정한 경쟁에 시급한 건 지식 전파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혁신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이끌 원동력으로 부각되며 ‘지식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여권 대선주자들이 ‘지식재산처’ 신설을 제안한 데 이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특히 중소기업의 특허 개발을 지원·보호하고 이들의 연구개발(R&D)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게 할 수단을 다방면으로 강구할 것을 주문했다.
이 같은 정책 기조에 깔린 문제의식도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 1인당 특허 출원 건수가 세계 1위이고, R&D 역시 국내총생산(GDP) 비중으로는 세계 1위”라며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이나, 실제 R&D 성과가 산업 현장의 생산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낮다”고 지적했다. 간단히 말해,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는데 정작 돈 되는 결과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식재산권은 기술이나 디자인 또는 저작물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에 대해 국가가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제도인데, 부동산 같은 유형자산에 대한 재산권과는 달리 특허권이나 저작권은 그 효력이 특정 기간 동안만 존속된다. 한국 특허권은 출원일로부터 20년까지만 인정되고 저작권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구조다. 한 가지 특징은 지식재산권이 만료되는 순간 해당 기술이나 저작물 가치가 추락한다는 점이다. 아마존에서 ‘죄와 벌’을 전자책으로 살 때 가격은 고작 1달러다.
지식재산처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운 한 대선 후보는 “기술 유출 피해가 빈발해서 중소·벤처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뻗어 나가는 성장의 사다리가 부실하다”고 했다. 좋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지식재산권 때문에 중소기업이 손해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 인식 아래 정부와 여당은 지원과 보호 확대 일변도의 지식재산권 정책을 펴고 있다. 특허 침해에 대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이미 시행 중이다. 선거를 앞두고 기술 담보 금융도 늘릴 태세다.
실상은 어떨까? 특허의 수준을 가늠하는 한 지표는 ‘피인용 횟수’다. 논문처럼 특허도 선행 특허를 인용하게 되는데 많이 인용되는 특허가 좋은 특허로 간주된다. 그런데 특허청에 등록되는 특허 중 절대다수가 단 한 번도 인용되지 않는 소위 ‘장롱 특허’다. 게다가 피인용 수가 높은 ‘혁신적 특허’ 출원인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일색이다. 임팩트 없는 일회용 기술만 개발하고 있다면 그 기업의 발목을 잡는 원인은 기술 유출이 아니라 자체 역량 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지적대로 문제는 저조한 연구개발 ‘효율성’이다. 특허답지 않은 특허가 범람하고, 수상하게도 정부 연구개발 과제의 성공률은 100%에 육박한다. 이런 마당에 특허권을 강화하고 지원을 늘려서 어떻게 그 효율성을 올린단 말인가. 오히려 장롱 특허만 더 양산해 효율성이 악화되고 분쟁이 빈발해 변호사만 신나는 상황이 우려된다. 중소기업이 소송을 당하지 말란 법도 없다. 특허 요건과 심사 역량을 보강해 내실 있는 기술을 골라내는 시스템 구축부터 시작하는 게 합리적인 수순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혁신 장려도 필요하지만 대기업이 쌓은 노하우 확산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기업 특허를 중소기업 특허가 인용하는 경우는 눈 씻고 찾기 힘들다. 그만큼 혁신 생태계가 위아래로 단절돼 있다. 과도한 지식재산권 보호는 시장 진입을 막고 역동성을 저해한다. 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시급한 건 지식 전파가 아닐까? 놀고 있는 공공부문 특허를 중소기업에 무상 개방한다는데 장롱 특허 갖고 생색만 내는 꼴이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