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12세에 왕위에 오른 조선 13대 왕 명종은 여름만 되면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재위 16년에는 경연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나는 약질인 데다 감기에 잘 걸리고 간간이 설사까지 해 항상 기운이 나른하다. 간혹 열이 치받치면 현기증이 일어난다. 학문이 중하기는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니 어떻게 경연을 할 수 있겠는가.” 명종의 어지럼증 기록은 재위 18년에도 나타난다. “오늘 낮 늦게부터 온몸이 한기로 떨리고 수족이 차다가 덥다가 하며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니 무슨 약으로 다스려야겠는가?”
심열증(心熱症)이 그 원인이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부 장기를 뜨겁게 달궈 병을 유발한 것. 그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한 장본인은 외아들 순회세자와 어머니 문정왕후였다. 특히 순회세자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 피우(避寓·거처를 옮김)할 만큼 체질이 약했다. 명종이 “사세(辭世·죽음)가 부득이하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위중함을 짐작할 수 있다. 순회세자는 명종 18년에 1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 문정왕후는 명종의 건강을 해치는 폭탄 같은 존재였다. 실록은 문정왕후가 아들인 명종에게 ‘내가 아니면 어떻게 이 자리를 소유할 수 있었으랴’라며 호통하기도 했으며 이에 명종이 “눈물을 흘리었고 목 놓아 울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명종은 늘 어머니 때문에 심기가 편안하지 않고 비위(脾胃)가 불편해 어지러움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한다. 머리와 심장으로 열이 몰리고, 신장은 차갑게 식어가는 상열하한증(上熱下寒症)으로, 한의학은 심열증을 이 증상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어지럼증은 여름철에 특히 심해진다. 날씨가 더워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이 확장되고 땀을 통해 수분과 전해질이 많이 배출되면서 체액량이 줄어 혈압이 낮아진다. 심장은 양수기처럼 혈액을 퍼 올려야 하는데 혈압이 떨어지면 신체 중 가장 위에 있는 머리, 뇌로 가는 혈액량이 감소해 두통, 피로감, 무기력증, 이명, 소화불량, 구역감 등 증상이 나타난다.
동의보감은 “찬 과일이나 찬 음료를 여름에 오히려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화력은 삭히고 찌는 열기를 바탕으로 하는데 찬 음식은 위장의 온기를 없애 설사를 일으키거나 복통을 유발한다. 심장과 신장 사이의 수승화강 흐름을 방해한다. 복날 뜨거운 삼계탕을 먹는 ‘이열치열’의 여름나기 관습이 생긴 것도 모두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