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해군 女중사 사망]軍, 병영폐습 자정능력 한계 드러내 기강 해이 공군 女중사 사건 질타중에 성추행 되풀이 2차 가해 성추행 상관 “술 안따르면 3년간 재수 없어” 해군 같은 부대서 2~6월 또다른 성추행… 장교 1명 수사중
‘해군 女중사’ 소속 2함대사령부 차량 통제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사망한 해군 중사가 소속된 경기 평택 제2함대사령부 앞에서 13일 군인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이 부대 소속 여중사는 전날 부대 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돼 군 수사당국이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평택=뉴스1
해군女중사 유족 “2차가해-회유시도 있었다”
성추행 피해 신고 사흘 만인 12일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해군 A 중사가 2차 가해를 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았던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5월 21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처럼 A 중사도 가해자로부터 회유성 협박과 의도적 따돌림 등 지속적인 괴롭힘을 겪었다는 것이다. 유족은 A 중사에 대한 상관의 회유 및 은폐 시도까지 있었다고 주장해 부대 차원의 은폐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군은 이날 A 중사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신고나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만 강조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 중사와 유족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A 중사는 메시지를 통해 “(가해 상관이) 일해야 하는데 자꾸 배제하고 그래서 우선 오늘 그냥 부대에 신고하려고 전화했다”며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 될 것 같다”고 호소했다. 또 가해자인 직속상관 B 상사는 성추행 다음 날인 5월 28일 사과하겠다며 A 중사를 식사 자리로 불러내 술을 따를 것을 요구했고, A 중사가 일과시간이라며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유족은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과 만난 하 의원은 “가해자가 아닌 부대 상관이 A 중사에게 ‘조용히 넘어가자’며 회유를 했다고 유족이 얘기했다”고 전했다. 또 이날 하 의원은 빈소가 마련된 국군대전병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고인은 (상관으로부터) ‘이번 일을 문제 삼으면 진급 누락이 될 수 있다’는 2차 피해를 입었다는 말도 유족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군은 이날 브리핑에서 A 중사가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최초 보고했지만 외부에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아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 및 상부 보고·신고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군이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해 2차 가해에 노출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 “간부가 ‘조용히 넘어가자’ 해”… 성폭력 묵살-2차가해 의혹
A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5월 말 공군 이 중사 사망 사건이 알려졌고,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사과하는 등 군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이 기간 동안 군이 성폭력 피해 신고 기간을 운영하고 재발 방지를 공언할 때도 A 중사는 가해자로부터 업무 배제 등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성추행 다음 날부터 2차 가해”
특히 A 중사는 9일 경기 평택 2함대로 이동하기 전까지 75일간 가해자와 분리가 안 된 채 작은 섬에 있는 부대의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성추행 17일 만에 가해자가 부대를 옮긴 공군 이 중사 사건보다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더욱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 “상관이 ‘조용히 넘어가자’ 회유”
A 중사는 성추행 당일 부대 C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그는 가해자를 불러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주의만 준 뒤 이를 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 사건 접수는 74일 만인 이달 9일에야 이뤄졌다. 해군은 “A 중사가 당시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또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면 법령상으론 인지 즉시 보고하게 돼 있지만 훈령상에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보고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족과 만난 하 의원은 “피해자의 1차 신고는 사건 당일이다. (군이 피해자의 의사를) 과잉 해석한 것”이라며 “C 상사가 ‘조용히 넘어가자’고 회유를 했다. (A 중사) 부모가 해준 얘기”라고 반박했다.
○ 국방장관, 76일 만에야 사건 파악
A 중사는 9일 성추행을 신고한 뒤 11일까지 3일 동안 8차례 2함대 성고충상담관에게 전화상담을 받으면서 우울감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차례 상담에도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한 공군 이 중사 사건처럼 징후 포착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