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제2함대사령부. 2021.8.13/뉴스1 © News1
10년 넘게 군 생활을 해온 해군 여성 부사관이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것도 ‘큰마음 먹고’ 상관으로부터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지 불과 사흘 만이다.
군 당국은 부랴부랴 이번 사건과 관련한 ‘배경 설명’을 자처했다. 지난 5월 발생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이 언론보도를 통해 먼저 세간에 알려지면서 ‘뒷북’ 대응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사실을 ‘반면교사’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군 당국이 준비한 이번 사건 관련 설명은 그동안의 ‘기록’에만 의존한 나머지 A중사(32·여)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는가’란 질문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다.
지난 5월24일 2함대 예하 도서지역 부대에 전입한 A중사는 해당 부대에서 좋은 근무평정을 받아 상사로 진급하겠다는 목표 또한 뚜렷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인관계·상하관계가 좋다”는 평가도 받았다.
A중사는 6월30일 이뤄진 2함대 성고충상담관과의 첫 면담에서도 부대 근무와 관련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열심히 근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당시 A중사는 성고충상담관에게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은 털어놓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해군 측은 A중사가 5월27일 상관인 B상사로부터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주임상사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부터 “피해사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A중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건 결국 본인의 뜻이었단 게 해군 측 주장인 셈이다.
이와 관련 해군 수사당국은 A중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가 접수된 뒤엔 피·가해자 분리 조치와 피해자 조력 등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해군 측은 A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입은 뒤 신고까지 2개월 넘는 시간이 걸린 배경 등을 놓고선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밝힐 사안”이라고만 했을 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해군이 확보한 A중사 관련 기록에선 이 부분을 설명해줄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A중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기 이처럼 늦어진 이유에 대한 좀 더 ‘그럴듯한’ 설명은 정치권에서 나왔다.
전날 A중사 유족과 만났다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군이) ‘피해사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A중사의 발언을 과잉 해석한 것”이란 견해를 제시했다. A중사 입장에선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이 공론화될 경우 향후 군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그런 발언을 했을 수 있단 것이다.
A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을 땐 이 같은 이 중사 사건의 전모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피해 신고시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A중사도 충분히 예측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게다가 하 의원이 전한 유족 측 증언에 따르면 A중사는 B상사로부터의 성추행 뒤에도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
특히 B상사는 성추행 다음날인 5월28일엔 ‘화해하자’며 A중사를 점심식사 자리에 불러내선 ‘술을 따르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자 “3년 동안 재수 없어” 등의 악담을 퍼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중사가 생전에 부모에게 보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엔 B상사가 자신을 업무에서 ‘배제’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 같은 유족 측 증언 등은 해군의 A중사 사건 관련 설명엔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다.
해군에 따르면 A중사가 숨진 숙소에서 유서는 나오지 않았다. 군 수사당국은 현장에서 A중사의 휴대전화를 발견해 포렌식을 통해 내용물을 확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군 수사당국은 또 A중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처음 알린 주임상사가 이를 다른 부대원들에게 유포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앞으로 수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유족 측은 “가해자에 대한 엄정하고 강력한 처분을 원한다”며 “두 번 다시 이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아이가 마지막 피해자로 남을 수 있도록 재발방지를 바란다”는 입장을 해군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