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광복 76주년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역사문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향해선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침략 책임에 대한 언급 없이 지난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주창했던 ‘적극적 평화주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올해 한일 정상의 8·15 메시지는 좀처럼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 대통령에게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아무런 구체적 구상이나 제안이 없었고, 스가 총리에게선 오히려 퇴행적 우경화 냄새만 짙어졌다. 지난달 도쿄 올림픽 개회식을 계기로 추진했던 문 대통령 방일과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된 이후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서로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듯한 분위기다.
문 대통령에겐 이번이 임기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인 만큼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일관계의 전환점 마련을 위한 제안이 나오길 기대했다. 2017년 취임 이래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강경한 주장을 내놓던 문 대통령이지만 지난해부터 그 톤을 누그러뜨리며 대화를 통한 관계 회복에 무게를 실어왔다. 이번에도 문 대통령은 일본에 유화 메시지를 던졌지만, 구체성 없는 원론적 주장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한일관계는 이제 손을 대면 댈수록 문제가 더욱 커지는 골칫덩이가 돼버린 듯하다. 문 대통령도, 스가 총리도 모두 다가오는 선거와 국내적 정치논리에 매몰된 채 아예 손 놓은 분위기다. 이래선 미래 양국관계에 큰 오점을 남긴 무책임한 지도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특히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모델’도 일본이 빠진 채로는 한낱 공염불일 뿐이다. 두 정상 모두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둘러 갈등 해결을 위한 실질적 외교를 재가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