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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전기차, 배터리도 친환경일까[정우성의 미래과학 엿보기]

입력 | 2021-08-16 03:00:00

‘벽돌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988년 개통 초기 휴대전화(왼쪽)와 접을 수 있는 폴더블 폰 등 최신 스마트폰의 모습(오른쪽). 배터리 기술의 발전은 벽돌 크기의 휴대전화를 지금처럼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아질 수 있게 했다. 동아일보DB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요즘 젊은 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벽돌만 한 휴대전화를 쓰던 때가 있었다. 단지 크다는 비유를 들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정말 모양과 크기, 무게가 벽돌과 비슷한 전화기였다. 기술이 발전하며 휴대전화는 점점 작아졌고,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요즘엔 큰 화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그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벽돌을 주먹만 하게 바꾼 결정적인 기술은 크기는 작아도 성능이 좋은 배터리였다. 스마트폰 화면이 커지면서 더욱 오랜 시간 동안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대용량 배터리 수요도 늘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다. TV 리모컨이나 장난감에 들어가는 건전지, 휴대전화 배터리뿐 아니라 전기자동차에도 배터리가 널리 쓰인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배터리는 화학전지다. 두 금속의 성질 차이를 이용하는데, 금속이 이온화되는 정도가 다른 점을 활용한다. 학교에서 한 번쯤 실험수업으로 해봤을 오렌지 전지 역시 간단한 화학전지에 속한다. 오렌지를 두 개 놓고 각기 다른 금속을 꽂는다. 그 사이에 꼬마전구를 연결하면 환하게 불이 켜진다. 배터리는 충전 가능 여부에 따라 분류되기도 한다. 충전이 불가능한 1차 전지와 달리 2차 전지는 충전이 가능하다. 생긴 건 비슷하더라도 작동 원리는 크게 다르다. 1차 전지가 단지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라면, 2차 전지는 전기를 공급하면 이를 화학 에너지로 저장해 나중에 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 발전을 가로막던 것 중 하나가 저장장치였다. 컴퓨터의 두뇌가 엄청난 양을 빠르게 계산하더라도 계산 결과를 저장하는 장치가 많은 분량을 다루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다시 말해, 데이터를 읽고 쓰는 저장장치의 처리 속도가 느리면 두뇌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계산은 느리게 진행된다. 전기차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두뇌 혹은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보다 배터리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배터리의 크기가 작아지면 무게도 가벼워지고 제품도 보다 작고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크기가 작아지면서 배터리가 저장할 수 있는 전기의 용량도 작아져서 곤란한 일이 생긴다. 가령 건전지로 작동하는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면 제대로 통화도 하기 전에 전원이 꺼질 것이다. 그래서 작고 가볍고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들려는 움직임, 이른바 배터리 전쟁이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업계에서는 미래의 배터리에 적합한 소재를 찾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요즘 배터리 시장을 지배하는 소재는 리튬이다. 최근 리튬의 인기는 전기차의 돌풍과 관련이 깊다. 오렌지에 꽂은 금속판에 해당하는 게 전극인데, 최근에는 이 전극을 연결하는 전해질이 액체가 아닌 고체인 배터리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많다. 고체 전해질은 액체 전해질에 비해 온도에 영향을 덜 받고 폭발의 위험성도 작기 때문이다. 리튬은 그중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은 금속이다.

현재 리튬은 지구에 아주 적은 양만 존재하다 보니 이를 확보하기 위해 그 경쟁도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특히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리튬은 ‘백색 황금’이라 불릴 만큼 그 몸값이 치솟고 있다. 각 기업과 국가가 나서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리튬 매장지를 계속 찾아내고 있고, 심지어 전기차 회사 테슬라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는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의 소행성에서 리튬을 채취해 올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리튬을 비롯해 미래 신기술을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최신 배터리들의 소재 역시나 환경오염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리튬은 현재 채굴 과정에서 엄청난 지하수가 소비되는 등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이 전기차의 수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기차에서 엔진 못지않게 배터리가 중요하게 여겨지다 보니 최근에는 수명이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드는 경쟁이 치열하다. 동아일보DB

이와 함께 폐배터리의 처리도 골칫거리다. 대개 전기차의 수명은 10년 정도다. 이는 배터리의 수명과 무관치 않다. 전기차 배터리의 교체 주기가 10년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다른 부품보다 더 오래가는 배터리를 만들어, 배터리의 수명이 곧 전기차의 수명이라는 등식을 깨고 싶어 한다. 다만 기술의 진화로 아무리 수명을 연장하더라도, 결국 어느 순간이 되면 배터리는 새것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현재 대다수의 배터리는 수많은 유독물질로 구성됐다.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묵직한 배터리는 주로 납과 황산을 사용하는데 이들 성분은 학교 등에서 심각한 질환을 일으킨다고 배운 바 있다. 리튬은 대중적으로 생소해서인지 몰라도, 많은 이들이 조금 더 친환경적이라는 생각을 갖는 듯하다. 그러나 리튬 배터리 역시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리튬뿐 아니라 망간, 니켈, 코발트 등은 일반적인 쓰레기처럼 땅에 묻거나 태워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 더욱 많이 쏟아져 나올 폐배터리의 처리 방식은 우리에게 닥친 또 다른 과제다.

이 때문에 성능이 떨어진 배터리를 손봐서 다시 쓰거나, 금속을 추출해서 다시 재활용하는 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 중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받은 메달을 기증받은 폐휴대전화나 가전제품에서 빼낸 금속으로 만들었듯이, 폐배터리 역시나 또 다른 전기차나 다른 제품에서 쓰이는 배터리로 재활용될 수 있다. 향후에도 배터리의 생산 과정과 폐배터리 활용에 대한 이러한 고민은 전 사회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 위에서 친환경 이동 수단으로 각광받는 전기차가 결국 생산과 폐기에서 더욱 많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