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반군 탈레반은 15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앞서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을 선언하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으로 망명했다. 주요 거점 도시를 점령한 탈레반이 카불에서 11km 떨어진 곳까지 진격해 압박하자 결국 굴복한 것이다. 미군이 최종적인 철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이고 탈레반이 주요 거점 도시 장악에 나선 지부터는 겨우 열흘 만이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은 최신 장비로 무장했음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쟁 때의 월맹군에 훨씬 못 미친다고 평가한 탈레반 앞에서 무력했다. 서류상으로 병력은 30만 명에까지 이르렀으나 봉급을 타기 위해 거짓으로 등록한 유령 병사가 많아 실제 병력은 6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2월 미군과 탈레반의 철수 합의 이후 탈레반에 돈을 받고 무기를 판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 미군이 떠나기 시작하자 사기가 꺾여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미군은 전쟁 중 갑작스럽게 물러난 베트남에서와는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0년 전인 2011년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이번의 미군 완전 철수는 이슬람 정부에 안보 권한을 넘긴 2014년 이후에도 미군 1만 명 정도가 남아 아프간 군경 훈련 등의 일을 맡아왔는데 그마저도 그만둔다는 의미였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간 지도층은 분열을 거듭하고 부패에 빠져 나라를 다시 세울 준비를 하지 못했다.
미국이 미군 철수 후 아프간 정부의 몰락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단지 예상한 시기보다 훨씬 더 빨라 놀랐을 뿐이다. 몰락을 예상하면서도 미군은 철수했다. 미국이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을 국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타국의 자유와 인권만을 위해 한정 없이 군대를 주둔시킬 여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아프간 사태가 일깨워준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