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과 아프간전은 닮은꼴이다. 베트남전은 초강대국 미국이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작은 나라’(린든 존슨 대통령)에 무릎 꿇은 사건이다. 아프간전쟁은 미국이 830억 달러(약 97조 원)를 쏟아붓고 2400명이 넘는 미군을 희생시켜 가며 지원한 30만 아프간 정규군이 마약 밀매 등에 의존해 버텨온 6만∼7만5000명 탈레반에 백기 투항한, 미국에 베트남전보다 더한 치욕을 안긴 전쟁이다.
▷미국이 실패한 주요 원인은 현지 민심 오독(誤讀)이다. 미국에 베트남전은 자유와 공산 진영 간 대결이었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식민 지배에 맞선 민족해방투쟁’(토머스 프리드먼)이었다. 미국과 아프간의 악연도 미국의 냉전 프레임에서 비롯됐다.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은 소련에 맞서 싸우는 반군에 무기를 지원했다. 그중엔 무하마드 오마르가 있었는데 그는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가 돼 1996년 정권 탈취 후 공포정치를 개시한다. 미국의 지원으로 아프간은 ‘소련의 베트남’이 됐고, 미국이 키운 탈레반에 의해 아프간은 미국에 ‘제2의 베트남’이 됐다.
▷탈레반은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이 목표다. 의회도 선거도 없이 성직자 물라들이 통치하는 나라다. 20년 전과 달리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높고,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시민사회가 커졌다고 하지만 탈레반의 반인권적 억압 통치를 견디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카불 모멘트의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