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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사이공과 카불

입력 | 2021-08-17 03:00:00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명장면은 헬리콥터 신이다. 1975년 베트콩에 함락된 사이공의 미국대사관에서 미국인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탈출하는 장면으로 미국의 패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비극적 ‘사이공 모멘트’가 46년이 흐른 15일 탈레반의 입성을 앞둔 아프가니스탄 카불 미대사관에서 재현됐다. 사이공 모멘트의 속편이라는 ‘카불 모멘트’다.

▷베트남전과 아프간전은 닮은꼴이다. 베트남전은 초강대국 미국이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작은 나라’(린든 존슨 대통령)에 무릎 꿇은 사건이다. 아프간전쟁은 미국이 830억 달러(약 97조 원)를 쏟아붓고 2400명이 넘는 미군을 희생시켜 가며 지원한 30만 아프간 정규군이 마약 밀매 등에 의존해 버텨온 6만∼7만5000명 탈레반에 백기 투항한, 미국에 베트남전보다 더한 치욕을 안긴 전쟁이다.

▷미국이 실패한 주요 원인은 현지 민심 오독(誤讀)이다. 미국에 베트남전은 자유와 공산 진영 간 대결이었지만 베트남인들에겐 ‘식민 지배에 맞선 민족해방투쟁’(토머스 프리드먼)이었다. 미국과 아프간의 악연도 미국의 냉전 프레임에서 비롯됐다.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은 소련에 맞서 싸우는 반군에 무기를 지원했다. 그중엔 무하마드 오마르가 있었는데 그는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가 돼 1996년 정권 탈취 후 공포정치를 개시한다. 미국의 지원으로 아프간은 ‘소련의 베트남’이 됐고, 미국이 키운 탈레반에 의해 아프간은 미국에 ‘제2의 베트남’이 됐다.

▷2001년 9·11테러 후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 75일 만에 알카에다 지원 세력인 탈레반을 쫓아냈다. 미국엔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선 전쟁이었지만, 아프간엔 부족 간 전쟁에 가까웠다. 탈레반을 포함해 아프간인의 48%는 영국과 러시아 제국을 무찌른 파슈툰족이다. 하지만 미국이 지원하는 내각과 군부의 요직은 파슈툰족의 숙적인 타지크족이 차지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을 파슈툰족 부활 운동과 뒤섞었다. ‘무솔리니(이탈리아 독재자)는 기차를 정시에 달리게 했다’는 말이 있듯 납치와 부패가 횡행하는 무법천지 아프간에 최소한의 질서를 제공한 건 탈레반 정권이었다. 정부의 통치역량이 무장세력 탈레반보다 못했던 것이다.

▷탈레반은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이 목표다. 의회도 선거도 없이 성직자 물라들이 통치하는 나라다. 20년 전과 달리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높고,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시민사회가 커졌다고 하지만 탈레반의 반인권적 억압 통치를 견디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카불 모멘트의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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