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안정을 되찾고 나서야 미처 던지지 못했던 물음이 비집고 일었다. 어떤 마음일까. 일분일초가 급박한, 나의 손끝에 환자의 안위가 달린 길을 매일같이 달린다는 것은.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어떤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계실까. 잊고 지냈던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호기심이 많았다. ‘백지’의 세상을 손에 쥔 청춘의 특권으로, 모든 종류의 삶을 동경하고 궁금해했다. 불 꺼진 무대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배우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소극장에서 보조 연출로 일했다. 누가 봐도 뜨내기 외부자로 초반에는 꽤나 배척당했지만, “헤헤” 웃으며 그저 진심을 증명해 나갔다. 그렇게 내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 어쩌면 평생을 관객과 배우 이상으로는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삶 한복판을 비집고 들어갔다.
돌아보니 내가 잃은 것은 ‘호기심’보다는 ‘존경’이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수고스럽다. 그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라도 귀를 기울일 때에는, 그 기저에 상대에 대한 존경이 자리하고 있을 때이다. 내 것 너머의 삶에 대한 존경. 보다 구체적으로는 타인의 삶에 대한 순수한 존경이 야기한 호기심. 삶 한복판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간과 마음을 들여 긴히 이야기를 청하고 싶어지는 것. 상대적 우월감 혹은 대리만족을 위해 단편적으로 소비하는 호기심과는 그렇게 구분이 된다.
출근길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각자의 세상을 감당해내고 있는 모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질문을 건네고 싶어진다. 어떤 마음일까,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을까. 영화 ‘타인의 삶’에서 극작가 드라이만의 삶이 감청 요원 비즐러의 삶을 변화시켰듯, 어떤 삶은 변화를 불러온다. 앞으로의 날들에서는 의식적으로라도 더 궁금해 보려 한다. 내 것 너머의 세상과 그들이 품은 이야기들을.
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