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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으로 꾸민 K가곡, 우리말의 멋과 음악성 한껏 뽐내”

입력 | 2021-08-17 03:00:00

예술의전당 대학가곡축제
가곡 3∼5곡씩으로 줄거리 구성… 취업난-가족애 등 절절히 풀어내
전국 성악과 재학생 27개팀 참가… 76세 최고령, 실향민 연기도 눈길
“저변 확대 위해 다양한 시도 필요”



올해 처음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 대학가곡축제는 출연팀이 작은 음악극을 엮도록 해 잘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 가곡의 서사성을 이끌어냈다. 15일 ‘나울’팀이 공연한 ‘낡은 축음기의 기억’. 예술의전당 제공


“얘, 나는 잔치에 다녀올 테니 청소나 잘하고 있어!”

남겨진 처녀는 울컥해 노래를 부른다. 최진 곡 ‘시간에 기대어’다. “저 언덕 너머 그대가 살고 있을까, 계절이 수놓은 시간이란 덤 위에….”

오페라가 아니다. 몇 곡을 이어 부르고 퇴장하는 갈라 콘서트도 아니다. 14,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2021 예술의전당 대학가곡축제’ 중 ‘볼우물’ 팀 공연 모습이다. 예술의전당이 올해 처음 연 이 축제에서는 전국 대학 성악과에 재학 중인 27개 팀이 출연해 각기 한국 가곡 3∼5곡씩으로 20분 남짓한 음악극을 꾸렸다. 공연은 네이버TV로 동시 중계됐다.

혼자 또는 2∼6명씩 팀을 이뤄 신청한 출연자들은 저마다 독특한 색깔의 무대를 엮어냈다. 남녀 성악도 네 명이 모인 ‘볼우물’ 팀은 콩쥐팥쥐 또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산뜻하게 풀어냈다. 광복절 연휴에 열린 축제여서인지 ‘항일’과 ‘애국’을 다룬 소재가 많았다. 가천대 ‘더 데이 독립의 날’ 팀과 박성진 씨(추계예대)는 각각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독립지사의 희생을 극으로 구성했다.

청년층의 취업난을 그린 작품도 여럿이었다. 백지원 씨(성신여대)는 취업에 실패한 뒤 옛 그림일기를 보면서 위로를 얻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송기철 씨(한양대)는 거듭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하고는 달을 보며 고향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주인공을 표현했다.

‘엄마의 꿈’이란 제목으로 공연한 ‘들려드림’은 엄마와 아들, 딸로 구성된 가족팀으로 눈길을 끌었다. 만학도로 성악을 공부하게 된 엄마가 역시 성악을 공부하는 자녀들과 화음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았다. 어머니 김동희 씨(47·서울사이버대)는 “성악을 향한 꿈을 접어두고 살다가 아이들이 성악을 공부하게 되면서 다시 꿈을 싹틔웠다”며 “극에서 표현한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무대에까지 서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서울사이버대 ‘SCU 성악앙상블’의 ‘그리운 가족’에선 축제 최고령자인 이병학 씨(76)가 주목을 받았다.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을 연기한 이 씨는 맑은 노래결뿐 아니라 또렷한 대사와 평안도 사투리 등 자연스러운 연기까지 선보였다. 이 씨는 “우리 가곡은 우리말에 담긴 자연스러운 음악성을 표현한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곡을 제대로 부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 출연 팀들엔 작곡가 최진, 연출가 김태웅, 바리톤 공병우와 메조소프라노 김향은이 세 차례에 걸쳐 멘토링을 제공했다. 김태웅 연출가는 “팀마다 처음엔 극의 흐름을 잡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두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음악적 흐름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의 등수 없는 경쟁 끝에는 아쉬움도 남았다. 출연자들이 고른 2000년대 이후의 신작 가곡은 작곡가 최진과 김주원, 특히 ‘아트팝’을 표방한 김효근의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과감한 화성과 곡에 밀착하는 가사, 서정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곡들이지만 한국 가곡이 수십 년간 탐구해온 실험성과 사실주의 등 다양한 시도들이 배제된 채 특정 경향에 과도히 집중될 위험이 느껴졌다. 한국 가곡이 더 다양한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이 축제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더욱 많아져야 함을 느끼게 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청년들에게는 낯설었던 우리 가곡을 가깝게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계속해서 사랑받는 축제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