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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서현]2021년 ‘괭이부리말 아이들’ 코로나 시대 마지막 기댈 곳

입력 | 2021-08-18 03:00:00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동준이네 형제는 부모 없이 산다. 엄마는 오래전 집을 나갔고, 아빠는 돈을 벌어 돌아온다더니 감감무소식이다. 형은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않더니 본드에 취해 경찰서로 끌려갔다. 동준이는 동네 청년 영호 형 집에 살면서 학교를 간다. 친구네 사정도 마찬가지다. 집을 나갔던 엄마는 돌아왔지만 아빠가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 동네 아이들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골목을 배회해도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저녁 먹고 숙제하자”고 부르는 부모가 없다.

2021년 대한민국 어느 취약계층 거주지에 현미경을 들이댄 듯한 이 풍경은 2001년 출간된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속 이야기다. 외환위기 직후 나라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절 소외된 지역 아이들을 다뤘다. 책이 나온 지 20년이 흘렀는데도 어떤 아이들의 삶은 그 시절만큼 가혹하다. 김중미 작가가 지금 이 작품을 썼다면 이런 문장을 보탰을까. “코로나19가 터지며 동준이는 학교에 가지 못해 점심마저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코로나19는 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감염 우려로 학교는 문을 닫았다. 기초 ‘학력’을 걱정하는 집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취약계층의 생업은 더 쪼들려, 아이들은 집 안에서 방치됐다. 굿네이버스가 지난해 말 펴낸 ‘코로나19와 아동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 10명 중 1명이 “코로나 이후 평일 5일 내내 보호자 없이 지냈다”고 응답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혼자 있는 비율은 더 높아졌고,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거나, 부모의 스트레스가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어났다.

17일부터 개학이 본격 시작됐다. 교육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속에서도 대면수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규 확진자 수가 연일 2000명 안팎을 오가며 방역에 대한 불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 시국에 어떻게 개학을 하느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생활을 지탱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마지막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경기지역 한 초등교사는 “도심 취약계층 아이들의 경우 등교를 하지 않으면 방치될 확률이 높다. 학교에 나오면 적어도 저녁은 먹는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수라도 있다”고 말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게도 ‘학교’는 큰 무게를 지녔다. 청년 영호는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역시 어렵게 자랐지만 학교 안에서만큼은 보호받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사람 역시 학교 선생님이다.

‘교육’이라는 본래 역할에 ‘방역’까지 떠맡은 교사들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울지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아이라도 학교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면 학교와 교사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일 테다. 학교가 문을 열면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스크 너머로 서로의 안부를 더 많이 묻기를, 온라인 수업 화면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아이들의 그늘을 부디 누군가는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