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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혼돈에… 패럴림픽 출전 꿈도 좌절

입력 | 2021-08-18 03:00:00

태권도 메달 도전 쿠다다디씨
도쿄행 여객기 없어 카불에 발묶여
“장애 여성에 희망 주고 싶었는데…”



도쿄 패럴림픽 출전을 준비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정권 교체로 출전이 좌절된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 사진 출처 국제패럴림픽위원회 홈페이지


자키아 쿠다다디(23)는 일주일 전만 해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로부터 ‘평화와 희망의 메신저’라는 평가를 받았다. 쿠다다디는 아프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아프간 육상 선수 호사인 라술리(24)와 함께 도쿄 패럴림픽 개막 1주일을 앞둔 17일 도쿄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아프간 수도 카불에 갇혔다.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 정권을 잡으면서 도쿄로 가는 모든 민항기 노선이 막히고, 물가도 폭등했기 때문이다.

쿠다다디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로훌라 니크파이(34)가 아프간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따는 걸 보고 태권도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니크파이가 2012 런던 대회 때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따내자 쿠다다디는 울렁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IPC는 “아프간 장애인 여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라며 “쿠다다디는 아프간 사회에서 금기를 깨뜨린 실존적인 존재”라고 평했다. 탈레반 집권 시절 아프간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남성들이 판단한 여성을 ‘명예살인’하는 문화가 남아 있던 나라였다. 그러나 당시 아프간은 미국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성별도 장애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IPC와 인터뷰하면서 “가족들의 희생과 지원으로 패럴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고 말했던 쿠다다디였다.

2016년 세계장애인태권도선수권대회를 통해 주목받은 쿠다다디는 “장애를 지닌 아프간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운동에 매달렸다.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폭탄 테러나 암살 위협을 받기도 했으나 도복을 입은 그에게 포기는 없었다. 와일드카드(특별 출전권)를 받아 도쿄 패럴림픽에 나가게 됐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태권도 K44(한 팔 장애 중 팔꿈치 아래 마비 또는 절단 장애가 있는 유형) 부문에 출전할 예정이던 쿠다다디는 “정말 도쿄에 가고 싶다. 나는 그저 도쿄에서 전 세계 선수와 만나 맞대결을 벌이면서 내가 가진 실력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 정권을 잡게 되면서 운동선수로서 그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됐다. 아리안 사디키 아프간 패럴림픽 선수단장은 “탈레반의 공격이 일어나기 전까지 쿠다다디는 공원, 집 뒷마당 등 연습이 가능한 모든 곳에서 기량을 갈고닦으면서 이번 대회를 준비해 왔다”면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무너진 뒤인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줄곧 패럴림픽 무대를 밟았지만 이번엔 출전이 무산됐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