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사는 법] 축구 에세이 펴낸 ‘월드컵 키즈’ 양송희 씨 “김남일 선수가 지오디보다 멋져” “골대로 슛 쏘듯 일단 저질렀어요”
2013∼2018년 K리그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일한 양송희 씨. 그는 “경기장관리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직접 발로 뛰는 일을 했다”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경기장에 잔디를 직접 심고, 한겨울엔 잔디 보호를 위해 넓은 그라운드를 덮는 차광망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양송희 씨 제공
2002년 한일 월드컵. 전북 전주시에 사는 열세 살 소녀는 축구와 사랑에 빠졌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옷을 입고 다녔다. 틈날 때마다 버스를 타고 K리그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어른이 된 소녀는 K리그 선수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됐고, 멈추지 않는 축구 사랑은 그를 영국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까지 이끌었다. 20일 에세이 ‘저질러야 시작되니까’(시크릿하우스)를 펴내는 양송희 씨(32) 이야기다.
그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축구장에 한 번 간 적 없었던 여중생이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가수 ‘god(지오디)’보다 축구선수 김남일 오빠를 더 좋아하게 됐다”면서 “축구선수를 좋아하는 마음에 K리그 경기장을 다녔던 게 축구 사랑의 시작”이라고 웃었다. “연예인은 TV 안에만 존재하는데 축구선수는 경기장에 가면 실제로 볼 수 있잖아요. 운이 좋으면 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싸이월드 일촌이 될 수 있었어요. 축구야말로 소녀 팬이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파고드는 행위)을 하기에 가장 완벽한 대상이었죠.”
2010년 전국의 아마추어 여대생들이 출전하는 축구대회에 나간 양송희 씨. 그는 “대학 시절 직접 축구 경기를 하며 팀워크와 도전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양송희 씨 제공
그렇게 5년 동안 일하면서 더 큰 무대에서 축구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자라났다. 2018년 여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EPL의 여러 구단에 지원서를 넣었고 한 달 만에 런던 토트넘 홋스퍼에 채용됐다. 한국의 정규직 대신 얻은 타국의 7개월 계약직, 구장을 밟는 대신 선수들의 유니폼이나 기념품을 파는 ‘팬스토어’에서 일했지만 손흥민 선수가 뛰는 명문 구단에서 일하게 된 것.
그는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을 사이즈별로 파는 일명 ‘손흥민 존’에서 일하거나 몸으로 뛰는 다른 현장직 업무를 겸했다”며 “철저하게 팬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EPL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국에서 하지 못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또 “월급이 한국 돈으로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아 경기가 없는 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며 버텼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성장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난해 1월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 일부러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진 않았지만 결국 그가 살아온 길이 재취업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해맑게 답했다.
“너무 오랫동안 취미로 좋아했고, 이젠 직업이 된 이 일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요. 어쩌면 저처럼 축구를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꿈꾸는 일을 찾아 어디든 떠날 거냐고요? 슛을 쏴야 골이 들어가듯 뭐든지 저질러야 꿈이 시작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