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연평도에서 10개월간 상주하며 해양문화를 조사할 때의 일이다. 아침마다 해안 길을 걸으며 생업에 나서는 어민들을 관찰했다. 운 좋은 날엔 어선에 동승해 물고기 잡는 모습을 촬영하고 기록했다. 그렇지 못한 날은 물때에 맞춰 삼삼오오 갯벌로 나가는 주민들과 동행했다. 어느 날 소문난 갯벌 채취 달인인 채모 씨와 함께 나섰다. 망둥이와 민꽃게가 있는 곳을 귀신처럼 알고, 손놀림은 정확하고 빨랐다. 그는 주민들보다 몇 배 이상 잡았다. 이후로 그를 따라 나서는 일이 잦았다. 채취 기술뿐만 아니라 갯벌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해줬다. “해산물 채취에 집중하면 물 들어오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저기 거문여라는 갯바위 보이지요. 몇 년 전 노인 두 명이 굴 캐다가 밀물을 눈치채지 못해 사망했어요. 작년에는 관광객 3명이 밀려온 안개에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해경에 구조됐어요. 평생 바닷가에서 산 사람들도 방심하면 위험한 곳이 갯벌입니다.”
옅은 안개가 낀 날이었다. 수개월간 갯벌을 다닌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혼자 갯벌 탐사에 나섰다. 낙지구멍, 피뿔고둥을 촬영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밀려든 자욱한 안개로 방향감각을 잃었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두려움 그 자체였다. 갯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밀려든 안개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채 씨가 알려준 방법이 떠올랐다. “해무(海霧)가 낄 때 육지 방향을 모른 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 큰일 납니다. 갯벌에 새겨진 물결자국의 직각방향으로 걸으면 육지가 나와요.” 바로 그 말이 안개를 헤치고 나올 수 있게 해준 등대였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