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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세살이 지쳐 강릉 이주… 수입 반토막났지만 행복 넘실넘실

입력 | 2021-08-19 03:00:00

‘주말엔 아이와 바다에’ 펴낸 김은현-황주성 부부의 강릉 이야기
빌라 전세금으로 오래된 2층 주택 마련… 사진-출판 경험 살려 웨딩 촬영업체 차려
아이들과 경포호 걷고 영진해변서 뛰놀아
“준비없이 이주 곤란… 한달만 살아보세요”



지난해 7월 강원 강릉시 허균·허난설헌기념관 소나무숲에서 딸을 안고 있는 황주성(왼쪽) 김은현 씨 부부. 김 씨는 “이곳은 주말에 아이와 함께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라고 말했다. 김은현 씨 제공


“우리 강릉 가서 살까? 나 행복하고 싶어.”

2015년 7월 서울시내 중국집. 결혼한 지 4개월 된 남편이 짜장면을 먹다 아내에게 불쑥 자신의 소원을 고백했다. 어렵사리 전세로 구한 서울 용산구 빌라에서 막 신혼생활을 즐기던 차. 누가 보면 철없는 얘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부부는 이듬해 8월 강원 강릉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때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부부는 평일 저녁에는 경포호 주변을 걷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영진해변을 뛰논다. 에세이 ‘주말엔 아이와 바다에’(어떤책)를 최근 펴낸 김은현(39·여), 황주성 씨(38) 부부 이야기다.

김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부부가 막 성인이 돼 겪은 ‘서울 공화국’에서의 삶은 지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강릉 출신인 그는 2001년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후 고시원에서 살았다. 입사한 뒤로는 친구와 자취를 했다. 남편도 경기도에 살면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 소재 대학과 직장으로 왕복 2시간을 왔다갔다 하느라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2015년 3월 결혼한 두 사람은 1년 계약으로 신혼집을 구했다. 거실 1개, 방 1개, 화장실 1개인 33m² 빌라의 전세가는 1억6000만 원. 아파트는 돈이 부족해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재계약 시기가 되자 집주인은 월세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매달 부담스러운 돈을 내야 했다. 결혼생활 내내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겠구나 싶어 진이 빠졌다. 치열한 직장생활에 지쳐가던 때이기도 했다. 그동안 자신만의 사업을 구상해온 남편이 조심스레 아내에게 제안했다. “당신 고향인 강릉에서 살면 어떨까. 새로운 일도 해보고 싶어. 바다가 가까운 것도 좋잖아.”

아내는 망설였다. 뮤지컬을 보고, 미술관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문화 인프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서울에서 아등바등 사는 게 정답일까 싶었다. 어느 날 남편은 강릉에 봐둔 2층 단독주택이 매물로 나왔다고 했다. 매매가는 빌라 전세금과 비슷했다. 결심이 선 두 사람은 2016년 8월 직장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향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릉 단독주택은 지은 지 30년이 넘은 집이었다. 1000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했다. 부부는 손품,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꾸몄다. 66m² 넓이의 2층에 살림집을 차렸다. 거실 1개, 방 2개, 화장실 1개, 창고 1개로 두 사람이 살기에 충분했다. 집에서 차를 타고 3분만 가면 해변. 100m² 넓이의 1층은 부부의 가게로 사용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출판을 해본 아내의 경험을 살려 셀프 웨딩 촬영업체를 차렸다. 때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할 때보다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지출도 절반 가까이 줄었어요. 서울에서는 돈 버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돈을 쓰면서 풀었죠. 여기선 바다와 산을 걸으며 공짜로 스트레스를 풀어요.”

부부는 강릉에서 두 딸을 낳았다. 아이들은 해변을 벗 삼아 커간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교육 문제가 크지 않고, 부부 역시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어 의료 인프라가 아쉽지 않다. 김 씨는 서울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현실적 조언을 덧붙였다.

“저는 강릉이 고향이라 적응이 쉬웠지만 낯선 지역으로 옮긴 뒤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무작정 자영업을 한다며 떠나는 것도 금물이에요. 냉철하게 고민하고 준비한 분들이 옮겨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강릉 이주를 고민한다면 한 달 살기를 미리 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