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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국-유럽은 아프간과 달라… 미군 감축 안해”

입력 | 2021-08-19 03:00:00

[美, 아프간 철군 이후]‘바이든 국익우선론’ 동맹국 우려에
백악관, 주한미군 감축 선 그었지만, 中견제 기여 ‘청구서’ 내밀 가능성



17일(현지 시간)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워싱턴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그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에도 불구하고 한국 및 유럽에서의 미군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워싱턴 군용 기지에 착륙한 전용헬기 ‘마린 원’에서 내리고 있다. 그는 13일부터 워싱턴 인근의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고 이날 백악관에 복귀했다. 워싱턴=신화 뉴시스·워싱턴=AP 뉴시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7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복해서 밝혀온 것처럼 한국이나 유럽에서 우리 병력을 감축할 의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이나 유럽은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둔했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프간 철군 이후 동맹국들의 우려와 비판이 잇따르자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에 선을 그은 것.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미군 주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만큼 중동에서 발을 빼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하려는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자국 국익에 기여할 ‘동맹 청구서’를 내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설리번 보좌관은 한국 등 동맹국에 대해 “내전이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잠재적인 외부 적을 다루고, 적들로부터 우리의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中견제 사활건 美, 주한미군 역할 늘리고 경제동맹 청구서 내밀듯”
美 “주한미군 감축 안해”


설리번 보좌관이 주한미군 감축에 선을 그은 건 미군 철수 직후 아비규환이 된 아프간 상황을 보면서 다른 동맹국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20년간 최대 2조 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입하고도 현지 정부의 부패와 무능함으로 철군을 결정한 아프간과 한국 등 핵심 동맹국들의 전략적 가치를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 설리번 보좌관은 “동맹 및 파트너들에 대한 우리의 (안보) 약속은 신성불가침(sacrosanct)이며 지금까지 늘 그래 왔다”며 ‘동맹’이라는 단어를 11번이나 언급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국익을 수차례 강조하며 ‘바이든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천명한 만큼 ‘미국의 방위 약속’으로 혜택을 입는 동맹국에 비용 지불을 한층 더 강하게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는 대북 억지력 제공 중심의 안보 동맹을 벗어나 자국 경제에 기여하는 첨단 기술, 제조업 등 분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해 동맹 역할을 늘리라는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 전략의 중점을 중동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기고 미국 경제 산업을 위협하는 중국의 굴기를 막는 데 사활을 걸었다. 그만큼 한국에 청구할 동맹 비용의 핵심은 경제-안보 두 분야에서 중국 견제 동참에 대한 압박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주한미군, 中 위협 대응으로 역할 확대 가능성”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에 선을 그은 데는 주한미군에 장기적으로 북한 위협에 더해 중국의 안보 위협에 맞설 임무를 부여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철군을 통해 중국 압박에 힘을 쏟을 여력이 생긴 만큼 주한미군 역할을 대북 억지에만 국한하지 않고 중국 견제로 역할을 확대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다른 소식통은 “미국인들은 캠프 험프리스(평택 미군기지)를 ‘중국의 턱을 노리는 비수’라고 표현한다”며 “중국을 겨냥한 역할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도 “아프간 사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중국”이라며 “혹시 있을지 모를 주한미군 재배치나 역할 조정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은 5월 미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역할에 대해 “한반도를 넘어선 동맹 협력의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에 ‘안보 역할 분담’을 더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우선 중국이 극렬히 반대해 온 미군 중거리미사일의 한반도 배치 등을 거론하고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명시한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 등 미중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역에서의 훈련 참여 등 한국의 역할을 요구할 수도 있다. 올해 12월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안보협의체)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美 “한미 동맹, 경제 동맹으로 확대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 첨단 기술 협력을 한국에 더욱 강조하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부가 미국 싱크탱크와 연 회의에서 “한미 동맹을 경제 동맹으로 확대하자”는 미국 전문가의 제안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이 참여하기로 한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조업의 미국 주도 재편에 한국의 역할 확대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 분야 세계 공급망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미중이 극한 경쟁을 벌이고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6G, 인공지능(AI) 등 각종 신기술 분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이 분야 연구개발과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할 것을 요구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시하는 미 중산층의 이익과 직결된다.

청와대는 이날 “(중국 견제를 강화할 수 있으나) 우리는 균형 외교, 실리 외교를 해 왔으니 오히려 역으로 잘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중동 지역에서 미군을 뺀 핵심 이유가 미국의 ‘사활적 이해’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곧 인도태평양이고 중국 견제 동참의 핵심 국가가 한국”이라고 했다. 이어 “동맹국이 비용을 지불하면 그 네트워크의 과실을 함께하겠지만 한국이 중국 견제에 지금처럼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네트워크에서 점차 배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