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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징용 배상 ‘외교의 시간’ 빠듯한데 韓日 팔짱 끼고 있을 건가

입력 | 2021-08-20 00:00:00


수원지법 안양지원이 최근 일제 강제징용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계열사가 국내 기업 LS엠트론에서 받을 물품대금 8억5000여만 원에 대해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대전지법이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특허권·상표권을,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일본제철과 포스코 합작사의 주식을 각각 압류한 적은 있으나 물품대금을 압류하면서 피해자가 직접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추심 명령까지 내린 것은 처음이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으로부터 실질적 배상을 받는 데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피해자들은 3년 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도 일본 기업 상표권이나 주식을 현금화하는 절차를 거쳐야 해서 실제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법원은 국내 기업이 일본 기업에 줘야 할 거래대금을 압류해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금화 절차 없이 배상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배상 집행은 가뜩이나 최악인 한일관계를 더욱 파국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 관방장관은 어제 “만약 현금화가 된다면 일한관계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된다”며 한국에 해결책을 조기에 제시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강제집행 방식으로 (일본 기업 자산이) 현금화되는 등 판결이 실행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전에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법적 배상 집행이 막바지 단계로 향하면서 양국이 외교적으로 해결할 시간은 그만큼 짧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양국 정부는 팔짱만 낀 채 상대에 책임을 미루고 있다. 재단을 설립해 피해자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안 등 정부와 정치권에서 거론되던 다양한 해법마저 아예 논의의 장에서 사라진 분위기다.

국가 간 문제를 사법적 절차에 맡겨둘 수는 없다.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해야 하지만 그것이 외교적 게으름과 무책임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한일 정부가 머리를 맞대는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면 양국관계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때 가서 또 누군가의 지원이나 중재를 구걸해선 한일 모두 나라꼴이 우스워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