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 씨 가해자 상대 손배소 승소 확정… “손배시효, 2002년 범죄시점 아닌 2016년 외상후 스트레스 진단 등 피해 현실화된 날 기준 계산해야”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 씨(30)가 20년 전 자신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코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성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는 범죄가 일어난 날이 아닌 실제 피해가 현실화된 날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9일 김 씨가 성폭력 가해자인 A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 씨에게 1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성범죄 피해의 영향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성범죄 당시를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는 것은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초등학생 때인 2001년 4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학교 테니스 코치였던 A 씨로부터 네 차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성인이 된 김 씨는 2016년 한 테니스 대회에서 A 씨를 마주친 뒤 두통과 수면장애 등의 증세에 시달리다가 병원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김 씨는 15년 만에 용기를 내 A 씨를 형사 고소했고, A 씨는 2년 뒤 대법원에서 강간치상 혐의로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김 씨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김 씨가 처음 PTSD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부터 계산돼야 한다는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소멸시효의 기준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해 현실화된 때를 의미한다”며 “김 씨가 전문가로부터 PTSD가 발현됐다는 진단을 받은 때 손해가 현실화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