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단체, 2018년부터 모니터링… 작년 둘째 출산후 ‘아동 학대’ 신고 “상습 방임… 위탁” 의견 냈지만 당시엔 ‘정인이법’ 시행 전이라 보호자 동의 없인 분리 불가능, 98차례 면담-방문에도 죽음 못막아 정부, 0~6세 가정 방문 확대 등 ‘학대징후 사전포착’ 강화나서
지난달 집에서 3일간 방치돼 숨진 3세 여아와 친모인 A 씨(32)는 사건 발생 전 분리 조치 등 최악의 상황을 막을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아동학대 제도가 미비해 실현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시민단체가 나서 모녀를 분리시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관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사례 관리 대상으로만 등록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관할 행정복지센터가 98차례 A 씨를 면담하거나 방문했지만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인천경찰청은 A 씨를 아동학대살인 혐의로 이달 13일 구속 송치했다.
○ 1년 전 ‘모녀 분리’ 주장했지만…막지 못한 죽음
1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씨는 2018년 6월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한 모텔에서 딸 B 양을 출산했다. A 씨는 B 양을 낳은 직후 상담 과정에서 출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현실을 부정했고, 무기력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B 양의 출생신고도 곧바로 하지 않았다. 2019년 10월에는 돌이 갓 지난 B 양을 도우미에게 맡기고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다.2018년부터 A 씨를 모니터링해 오던 한 미혼모 단체는 지난해 3월 A 씨를 인천 남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당시 A 씨가 둘째를 집에서 출산하면서 B 양이 출산 장면을 그대로 보도록 둔 것은 정서적 학대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단체는 아동보호기관과 행정복지센터가 참여한 통합 회의에서 A 씨에 대한 상담기록 등을 근거로 A 씨가 ‘경계성 지능’에 해당하고 양육 의지도 거의 없다며 B 양을 위탁 가정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단체는 “B 양이 엄마의 자가 출산을 목격해 큰 충격을 받았고, 그동안 B 양이 상습적으로 방임돼 온 점 등으로 미뤄 볼 때 A 씨는 양육 능력이 없고 학대 위기 징후가 보인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아동보호기관과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2019년 4월부터 올 7월까지 98차례에 걸쳐 A 씨를 방문했지만 결국 비극을 막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A 씨는 B 양을 혼자 둔 채 집을 나가 3일간 아이를 방치했다. 24일 집에 들러 B 양이 숨진 것을 확인한 뒤에는 남자친구 집으로 가 2주간 숨어 지냈다. 행정복지센터는 이 기간에도 두 차례 A 씨 집을 방문했다. A 씨는 복지센터 직원이 집 앞에 두고 간 과일을 치우거나, 직원이 “집으로 음식을 가져가겠다”고 연락했을 때 “아이와 시장에 가기로 했다”고 둘러대며 아이가 숨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복지센터에서 전화가 와 신고하려고 용기를 내 집에 갔는데 신고를 하지 못했다. 걸어놓은 물건만 들고 와서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정부 ‘학대 징후 사전 포착’ 대책 내놔
정부는 사전에 아동학대 조짐을 적극적으로 파악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19일 ‘아동학대 대응체계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정인이법’ 개정 이후에도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대응체계 보완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우선 2024년까지 가정방문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보건소 간호사 등 전문 인력들이 만 0∼2세 영유아를 둔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제도다. 건강 상담을 진행하면서 신생아의 성장 환경까지 함께 확인해 영유아 학대 징후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생애초기 건강관리 시범사업’이란 이름으로 현재 전국 29개 보건소에서 실시되고 있다. 정부는 또 0∼6세 영유아 가운데 필수 예방접종을 하지 않거나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아동 역시 전문 인력들이 직접 찾아가 확인하도록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더라도 위기아동 조사는 대면 방문을 원칙으로 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