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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前 유리구슬 ‘영롱’… 금동관 꽃무늬도 선명

입력 | 2021-08-20 03:00:00

광주박물관 신덕고분 특별전
발굴 30년만에 유물 전체 첫 공개… 백제-倭-가야-토착세력 문화 혼재
초록-노랑무늬 연리문 구슬 ‘정교’… 경주 황남대총 출토품과 닮은꼴



국립광주박물관의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특별전에 전시된 신덕 1호분 출토 ‘연리문 구슬’. 색색의 유리판을 이어 붙여 줄무늬처럼 만드는 기술의 난도로 인해 희귀 유물로 꼽힌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마치 줄무늬 호박처럼 초록색과 노란색 무늬들이 번갈아 이어지며 영롱한 빛깔을 뽐낸다. 원색의 유리구슬만 봐선 1500년의 세월을 짐작하기 힘들다. 지름은 불과 1.2cm. 허리를 숙여 진열장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봐야 형태를 자세히 살필 수 있다. 초록색과 노란색 유리판을 손톱 크기보다 작게 이어 붙인 정교한 솜씨에 다시 한번 놀란다.

17일 둘러본 국립광주박물관의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특별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 유물은 전남 함평군 신덕 1호분에서 출토된 ‘연리문 구슬’이다. 이 유리구슬은 제작기법이 까다로워 신덕고분 외에 경주 황남대총과 노서리고분, 공주 무령왕릉과 수촌리고분, 나주 복암리고분에서만 출토됐을 정도로 희귀하다. 신덕 1호분에서는 총 4점의 연리문 구슬이 나왔는데 이 중 초록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섞인 것은 황남대총 북분 출토품과 유사하다. 두 겹의 유리 사이에 금박이나 은박을 덧댄 ‘중층 유리구슬’도 나란히 전시됐다. 두 유물 모두 무덤에 묻힌 이의 신분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10월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국립광주박물관이 1991∼2000년 신덕 1호분 발굴조사 후 출토 유물 전체(871점)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로 30년간 발굴 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다. 신덕 1호분의 봉분이 일본 고대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 형태를 갖고 있어서다. 박물관은 신덕고분 특별전을 최근 개최한 데 이어 이달 말 발굴 조사 보고서를 발간한다.

금동관은 백제와 왜의 양식이 섞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시는 백제와 왜(倭), 가야, 지방세력의 문화가 신덕고분에 혼재돼 있다는 보고서의 결론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유리구슬 옆에 전시된 금동관은 조각으로 나와 전체 형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뾰족한 도구로 금속판을 눌러(타출·打出) 표현한 육각형과 꽃무늬를 볼 수 있다. 이는 무령왕릉이나 익산 입점리고분 등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백제 양식이다. 그런데 관테 위로 두 개의 산봉우리가 솟아난 이른바 광대이산식(廣帶二山式)은 미즈라(고대 일본 남성들의 머리 모양) 장식품을 모티브로 한 왜의 문화다.

철기 진열장에 놓인 앙증맞은 크기의 쇠도끼, 쇠낫, 쇠손칼은 가야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약 6cm 길이에 불과한 일종의 미니어처로, 실생활이 아닌 매장 의례용으로 제작됐다. 신덕고분 근처 만가촌 고분군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철기가 나왔는데 학계에선 무덤 주인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부장품으로 본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무덤에서 출토된 쇠비늘 갑옷을 살펴보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시는 말미에 신덕 2호분에서 출토된 널못(목관을 고정하는 쇠못) 5점을 소개하며 관람객들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1호분에서 불과 12m 떨어진 2호분에 묻힌 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1호분 발굴 조사 결과를 검토한 고고학자들은 1호분에 묻힌 이는 백제, 왜, 가야와 활발히 교류한 이 지역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안타깝게도 2호분은 1호분과 달리 극심한 도굴 피해를 입어 남은 유물이 널못밖에 없다. 그런데 1호분이 조성되고 채 100년도 안 돼 세워진 2호분의 양식은 당시 백제 중앙과 같은 육각형 석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백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2호분에 묻혔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하지만 파견 관리가 자신의 고향이 아닌 부임지에 묻혔다는 건 왠지 부자연스럽다. 박경도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2호분의 주인이 백제 관리가 아닌 1호분에 묻힌 지역 수장의 아들이나 손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