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길들이다/니컬러스 포크스 지음·조현욱 옮김/240쪽·3만3000원·까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시계 장인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에게 특별 주문해 만든 고급 시계. 까치 제공

왜 MZ세대는 명품 시계에 열광하는 걸까. 정밀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기 위한 인류의 여정을 담은 이 책을 읽어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열었다. “시계에 매혹되는 건 사람과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시계는 동서고금에 걸쳐 남녀노소를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저자가 추정하는 인류 최초의 시계는 ‘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이샹고라는 지역에서 발견된 원숭이의 종아리뼈가 고대엔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도구였다는 것. 2만5000년 전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이 뼈에는 구불구불한 빗금이 각기 다른 깊이로 수십 개 그어져 있다. 빗금의 깊이는 한 달 주기로 달라지는 달의 위상을 나타낸다는 게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다. 크기가 작은 뼈는 멀리 사냥을 떠날 때 갖고 가기 편리해 휴대성도 갖췄다고 한다.
시계는 아름다움을 향해 발전하기도 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는 장인에게 최고로 사치스러운 시계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나면 안 되고, 시곗바늘은 금으로, 케이스는 사파이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제작에 40여 년이 걸린 이 시계는 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뒤에야 완성됐다.
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의 수제 황금 시계는 15분마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소리를 낸다. 저녁이 되면 미국 뉴욕 맨해튼 하늘의 별자리를 보여준다. 시간의 정확성과는 상관없는 기능이 다수 담긴 시계지만 2014년 경매에서 당시 휴대용 시계 최고가인 2323만7000스위스프랑(약 300억 원)에 팔렸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저자는 “기계 부품으로 구성된 이 소우주는 시간을 알려주는 하찮은 일을 할 수도 있고, 별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고귀한 업무를 할 수도 있다. 시계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계는 주인이 어떤 감정과 목적으로 쓰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어쩌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마음에 사치스러운 시계를 원하지 않을까. 더 비싼 시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은 특권층만 소유했던 시계가 기술 발전과 함께 널리 퍼지니 남들과 차별화되고 싶은 데서 비롯된 건 아닐까. 요즘 MZ세대가 명품 시계를 사는 이유도 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달라지기 위해서일지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