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경북 포항시 독석리 해안에서 한미 해병대 장병들이 대규모 연합상륙훈련(쌍룡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가령 훈련 시나리오(연합 작전계획)에 따라 개전 초 북한의 방공망과 핵·미사일 기지 등을 정해진 시간 내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훈련을 하다 보면 자꾸만 지체된다는 것이다. 지휘부의 의사결정 지연이나 엇박자 등이 주된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작전 반응시간’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역공으로 아군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CPX와 병력·무기장비를 동원한 실기동훈련을 철저히 병행해 유사시 대응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연합훈련의 주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당시 필자에겐 사전에 각본을 짜고 하는 훈련에서도 이처럼 오차와 변수가 많은데 실전에선 오죽하겠느냐는 하소연처럼 들렸다. 어떤 치밀한 작전계획도 전쟁이 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연합훈련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다.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존의 3대 연합훈련은 모두 폐지됐고 그나마 연 두 차례의 CPX도 북한의 눈치를 살피느라 축소·중단되는 게 다반사가 됐다.
16일부터 시작된 올 하반기 CPX도 북한 김여정 노동장 부부장의 훈련 중단 압박을 의식한 나머지 상반기 훈련보다 참가 병력이 크게 줄었다. 전쟁 수행의 핵심축인 작전사(司)급 부대는 전시 편제에 따른 증원 인력을 운용하지 않고 현 인원만 참가하고 사단급 이하 부대는 수동적 응답만 하는 ‘대응반’만 가동하는 등 야전부대의 참여 수위도 최소화됐다. 이뿐만 아니라 대규모 연합 실기동훈련은 4년째 ‘올 스톱’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했다는 정부와 군의 주장도 미국이 일본과 호주 등 다른 동맹국과는 연초부터 대규모 실기동훈련을 활발히 진행하는 점에 비춰 보면 핑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연합훈련의 파행이 길어질수록 유무형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당장 한미 양국군 간 조직력과 유대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언어 문화가 다르고 무기장비 및 교리도 상이한 한미 양국군이 유사시 ‘한 몸’처럼 움직이려면 정례적인 대규모 실기동훈련 등으로 손발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군은 1, 2년마다 보직이 바뀌다 보니 연합훈련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훈련 경험과 소통 노하우를 축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일각에선 연합훈련의 파행이 2, 3년 더 지속될 경우 되돌리기 힘든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미 지휘관과 장병들의 전투 노하우 및 자신감이 형해화되면서 연합태세의 저하와 심각한 안보 공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한미동맹의 근간인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카드로 당연시하는 정부와 군의 안이한 인식 그 자체다. 국민 보호와 국가 안위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훈련조차 ‘협상칩’으로 남용하는 것은 북한의 오판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연합 방위태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첩경은 연합훈련의 정상화를 통한 대비태세 완비라는 군 안팎의 고언(苦言)을 군 지휘부가 되새겨보기 바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