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르케 잉겔스가 디자인한 2020년 상하이 엑스포의 덴마크 전시관 외관(위 사진)과 내부 모습(아래 사진). 잉겔스는 덴마크의 상징인 인어공주상을 중국에 가져가 반년간 전시해 화제가 됐다. 사진 출처 BIG 홈페이지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시기를 보면 어떤 폭발적인 에너지가 큰 힘으로 밀어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은 보편적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민주적인 건축을 꿈꿨다. 그런데 그 양식이 고착되면서 아주 지루해지고 딱딱해져 갔다. 엄숙한 모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미스 판 데어 로에의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를 비꼬는 ‘레스 이즈 보어(Less is bore·간결한 것은 지루하다)’라는 주장(로버트 벤투리)이 등장했고, 급기야 ‘예스 이즈 모어(Yes is More·긍정이 더 낫다)’라는 장난 같기도 하고 지나친 낙관주의 같기도 한 주장을 내세운 건축가가 나타났다.
예스 이즈 모어는 바로 덴마크 건축가 비야르케 잉겔스가 만든 건축 그림책 제목이다. 마치 무한한 긍정의 정신으로 프로젝트에 임한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 유연한 태도가 전 세계 클라이언트들이 그를 반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력과 만화가적 시각 때문인지, 그는 마치 장난을 하듯 간단한 도형으로 단순화해 직관적으로 건물을 만든다. 한눈에 들어오는 알기 쉬운 다이어그램과 직설적인 스타일이 반영된 건축물은 테트리스 게임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지붕에 스키 활강장과 도넛 모양 구름이 퐁퐁 솟아오르는 굴뚝을 갖춘 건물도 있다. 심지어 ‘2010년 상하이 엑스포’ 덴마크 전시관 디자인을 맡았을 때는 덴마크의 상징인 인어공주상을 중국에 가져가 반년간 전시하자는 의견을 내 결국 의회 승인까지 받았다.
V자와 M자 형태의 아파트 배치가 눈길을 끄는 집합주택 ‘VM하우스’(왼쪽)와 마당을 낀 테라스가 연결된 형태로 뒷벽면에 에베레스트를 그려 넣은 ‘더 마운틴’(오른쪽). 사진 출처 BIG 홈페이지
정해진 틀을 깨는 것은 무척 힘들다. 바꾸고 나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생각하겠지만 고정된 사회적인 관습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혁명에 가깝다.
어릴 때 라디오를 틀어놓고 잠깐 졸다가 어떤 이상한 노래를 들으면서 놀라서 깬 적이 있다. 산울림이라는 당시 신인 밴드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꺼야’라는 곡이었는데, 노래가 아니라 그냥 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후에 그보다 훨씬 더한 랩이라는 장르도 나오고 비슷한 형식의 산문 같은 노래가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때는 큰 충격이었다. 이런 노래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마치 연극의 1막이 끝나고 2막으로 넘어갈 때 잠시 커튼이 내려지고 암전되듯, 세상의 모든 일이 잠시 암전을 거친 후 더욱 밝은 빛 속으로 드러나듯, 내 음악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그 순간 한 단계 확장됐다.
문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직전 나타나는 세기말 양식은 수다스럽고 번잡하고 가벼우며 약간은 냉소적인 특징이 있다. 잉겔스의 놀이 같은 건축이야말로 다가올 새로운 전환기를 예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