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복은 100벌 넘게 밀려있어서 최소 한 달은 기다려주셔야 해요”
서울 강남구에서 11년째 맞춤정장을 만들어온 최학근 씨(37)는 지난해 말 ‘맞춤골프복’ 제작을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예복 수요마저 급감하자 4~5년 전 한달에 350벌씩 나가던 정장이 최근 60벌로 줄었기 때문이다. 최 씨는 “골프가 SNS 인증샷을 올리기 좋고 서너 명이 모여 즐기는 스포츠라 입소문이 빠르게 났다”고 말했다. 강남 수서동에서 맞춤복 매장을 운영하는 오민관 씨(32)도 “줄어든 정장 수요에 골프복 매출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맞춤정장을 팔던 자영업자들이 최근 맞춤골프복 제작에 나섰다. 정장만 취급해서는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지자 MZ세대 ‘골프 붐’을 타고 급성장한 골프복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MZ세대에겐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표출할 수 있어 비싼 가격에도 인기다.
●젊어지고 커진 골프복 시장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골프복 시장 규모는 지난해 5조1250억 원으로 전년보다 11% 성장했다. 2016년과 비교해서는 50% 증가한 수준으로 내년에는 6조 원대를 넘길 전망이다. 반면 24일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정장 매출은 전년보다 24.6% 줄었고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감소했다.골프를 즐기는 연령대가 낮아지며 정장보다 소비층도 넓어졌다. 코로나19 이후 골프 열풍은 MZ세대 젊은 골퍼가 주도했다. 지난해 한 번이라도 골프장을 찾은 20대는 26만7000명, 30대는 66만9000명으로 각각 전년 대비 92%, 31% 늘었다. 올해는 약 30만 명 늘어 1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정장의 경우 기업의 복장 규율 완화와 재택근무 확대로 대부분 젊은 직장인들이 착용하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나만을 위한’ 맞춤 제작에 환호하는 MZ세대
MZ세대가 골프 라운딩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인증하는 문화도 맞춤골프복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사진을 찍었을 때 남다른 개성을 뽐낼 수 있어 ‘나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MZ세대 소비 방식이 드러난 것. 인스타그램에서는 ‘골프스타그램(172만)’, ‘골린이(51만)’ 등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SNS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주목받길 즐긴다”며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한 골프가 이들에게 유행인 이유”라고 말했다.이에 맞춤골프복은 ‘나만을 위한 디자인’을 앞세워 젊은층을 공략하고 있다. 원단과 색깔을 비롯한 모든 디자인은 고객의 취향에 맞게 제작된다. 상하의에 모자, 장갑 등 기본 액세서리만 구매해도 200~3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지만 수요가 증가세인 이유다. 경기 동탄에서 맞춤골프복을 판매하는 마태오 씨(44)는 “기성복보다 개성 있고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어 비싸지만 2030세대에게 반응이 좋다”며 “정장만 제작할 땐 만나기 힘들던 젊은 고객이 10명 중 3명꼴로 늘었다”고 말했다.
맞춤골프복 트렌드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넘어선 ‘상품의 개인화’와 직결된다. 최근 개개인의 요구를 충족하는 주문제작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는 추세다. 특히 독특함을 찾는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개인화 서비스는 앞으로도 확장할 전망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앞으로 기업들도 개별화된 수요에 맞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즉각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제작 과정 전반에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을 접목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이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