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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살짝 걷어내니 쓰레기가 ‘수북’… 비양심에 신음하는 한라산

입력 | 2021-08-25 03:00:00

한라산 고지대 폐기물 매립 현장 르포



한라산 해발 770m 고지대 숲속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생활하다 그대로 묻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측이 인력을 동원해 쓰레기를 처리했는데 이처럼 한라산 도처에 수거해야 할 쓰레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범종 씨 제공


20일 오전 제주시 마방목지 인근 람사르습지인 물장오리오름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통제소. 한라산국립공원 지역에 쓰레기가 대량으로 묻혀 있다는 제보를 받고 통제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현장으로 향했다.

통제소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해발 770m 지점의 숲에 들어서자 무너진 돌담이 보였다. 과거 표고버섯을 재배하거나 숯을 굽던 사람들이 숙소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의 일부는 무성하게 자란 산수국으로 가려져 있었다. 돌담 부근에 가로세로 각각 3∼5m의 흙 웅덩이에 쓰레기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인력을 동원해 4일 쓰레기를 대량으로 수거했지만 쓰레기는 치워지지 않았다. 땅을 조금 파내자 술병, 비닐, 플라스틱 의자, 바구니 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쓰레기가 묻힌 곳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한라산국립공원 지역과 인접한 국공유지에도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현재 통제구역인 한라산 고지대 오름인 큰드레에서도 쓰레기가 확인됐다. 하원수로길 인근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슬레이트 건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1970, 80년대 표고버섯을 재배하거나 벌채를 위해 장기간 기거하면서 나온 쓰레기를 그대로 둔 것이다. 당시 표고버섯 재배지는 70여 곳으로 알려졌다. 1970년 국립공원 지정 후에도 상당 기간 표고버섯 재배와 벌채가 이뤄졌다.

꿀을 수확하는 양봉 작업장에서도 쓰레기가 대량으로 나왔다. 한라산을 남북으로 잇는 산간도로인 5·16도로 수악교 부근에서 지난해 10월 자원봉사자들이 양봉 관련 쓰레기를 담은 80L들이 포대 수십 개를 수거했다.

쓰레기 수거 자원봉사단체인 한라산지킴이 이범종 부이사장은 “한라산을 지나는 5·16도로, 1100도로변에서 수거 활동을 하고 있지만 차량에서 버리거나 공사나 교통사고 후에 생기는 쓰레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깊은 숲속에는 주로 표고버섯 재배를 하면서 버린 쓰레기가 도처에 묻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라산국립공원 생태 보전을 위해 체계적인 쓰레기 수거 계획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올 4월에는 한라산국립공원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불과 100여 m 떨어진 도로변에선 1970년대에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더미가 확인됐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줍기 힘들 정도로 대량이었다. 이곳은 2019년 5월 굴착기 등을 동원해 하루에만 2t가량의 쓰레기를 수거한 현장이었다. 쓰레기가 땅속에 묻혀 있다가 폭우로 흙이 쓸려 내려가자 노출된 것이다.

쓰레기는 썩으면서 토양이나 동식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알루미늄 캔은 완전히 썩는 데까지 80∼100년, 스티로폼은 50년 이상, 나무젓가락은 20년 이상, 플라스틱 용기는 50∼80년이 각각 소요되고 비닐봉지는 무려 400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깊은 숲속에 있는 쓰레기는 사람 손으로 일일이 걷어내고 지게로 운반해야 할 정도로 수거가 어렵다”며 “쓰레기 매립 여부 조사와 처리 등에 대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