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
18일 소방관들의 내부 익명게시판에는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일가족 4명이 숨진 서울 강북구 아파트 화재 당시 현장 대응 상황이 담긴 ‘파이어캠(신체 부착 촬영 장치)’영상이 내부에 공유된 된 뒤였다. 이 영상에는 불이 난 1302호에 요구조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다른 층으로 향하는 구조대, 구체적 지시 없이 무전기만 잡고 현장을 서성이는 현장팀장의 모습 등이 담겨있다. “그냥 수관(소방호스)만 가져와. 모양만 취하게”라는 후착대 팀장의 발언까지 녹음돼 있다고 한다.
한 소방관은 “문제 영상에 나오는 분을 쉽게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잘 하려는 마음과 달리 현장대응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외근직 대우해달라 외치지만 말고 제발 능력을 키우자”며 동료 소방관들을 독려했다. 일부 소방관들은 댓글 창에서 훈련 방식 변화와 인력 구조 개편 등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하며 열띤 토론을 이어가기도 했다.
소방관들이 현장에 출동할 때 몸에 설치하는 파이어캠은 재난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블랙박스’다. 파이어캠이 도입된 이후 소방은 영상을 내부 웹하드에 올려 재난현장 분석 및 사후평가, 교육자료 등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강북 아파트 화재 대응을 두고 내부 비판이 일자 수뇌부가 나서서 영상을 삭제하고 유출을 우려해 입단속을 하는 것은 내부 역량 강화라는 파이어캠의 존재 이유 중 하나를 무력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소방 내부 게시판에는 “왜 쓸데없이 글을 올려 조직을 와해시키냐”는 댓글도 있었다. 한 소방관은 거기에 다시 답글을 달아 “이런 잘못을 아무런 감정 없이 넘어가는 행동이 우리 조직을 나태하게 만들어 와해시키는 행동이 아닐까요”라고 되물었다. 서울소방본부가 일선 소방관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면 미흡한 현장 대응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