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일전의 특별함 알기에, 이기고 8강 갔을때 가장 기뻐”

입력 | 2021-08-26 03:00:00

‘도쿄 4강’ 여자배구 라바리니 감독
‘원더풀 쇼’ 김연경에 깊은 감사… 선수 심판 관중 모두가 존경하고
경기 흐름 바꾸는 능력에 감명… 한국인의 단합된 모습 인상적
우리 팀의 단결도 그대로 반영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4강 진출을 이뤄낸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올림픽에서 경기를 치르는 동안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공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었다. 팀 미팅이나 선수들을 따로 만날 때나 매 순간 목표를 설명하고 우리의 팀워크를 믿고 따르는지 확인했다”고 했다.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한국과의 계약 기간이 끝난 라바리니 감독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머물며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재계약 요청을 받아들일지 고민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모든 랠리마다 그가 보여준 ‘원더풀 쇼’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김연경은 특별하고(unique),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unbelievable) 선수였습니다.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눈부신 시간을 함께했던 동료애가 느껴졌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4강 역사를 이끈 스테파노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42·이탈리아)은 최근 대표팀 공식 은퇴를 선언한 ‘배구여제’ 김연경(33·상하이 광밍)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회 직후 일본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간 라바리니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김연경의 대표팀 은퇴 발표는) 나를 비롯한 모든 배구팬에게 감동적(touching)이고 슬픈(sad) 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9년 1월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된 그에게 지난 2년은 곧 김연경과의 동행을 의미했다. 그는 “처음 본 김연경은 매우 숙련돼 있고, 또 혼자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인상을 줬다. 동료, 상대팀, 코치, 심판, 관중 할 것 없이 경기장 위 모두가 그를 존경한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선수 경험 없는 지도자’라는 이색 경력을 가진 라바리니 감독에게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건 색다른 도전이었다. 어렸을 때 본 한 배구 코치의 열정과 선수와의 관계에 매료돼 지도자의 꿈을 꿨다는 그는 “감독은 리더이자 보스, 선생, 아버지, 큰형이기도 하지만 또한 선수들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자신만의 지도관을 설명했다.

4강 진출이라는 성과는 라바리니 감독에게도 각별했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일본과의 A조 조별예선(3-2 승리)을 꼽은 그는 “무엇보다 우리의 목표였던 8강 진출을 달성한 경기였다.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과의 경기란 더 강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고 말했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과거 자신이 보좌했던 조반니 귀데티 터키 대표팀 감독(49)을 상대로 처음 승리한 8강 맞대결(3-2 승리)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라바리니 감독은 “한국에 온 첫날부터 한국인들이 어떻게 단합되고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는지 느꼈다. 우리 팀의 단결은 한국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연경의 대표팀 은퇴 이후 앞으로 한국 여자배구가 안게 될 과제도 진단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지난 올림픽은 한국 배구와 국제배구의 간극을 보여준 대회라고 생각한다. 여자배구는 더 격렬하고 빨라지고 있다. 한국 배구가 국제대회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이 흐름을 잘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끝으로 공식 임기를 마친 라바리니 감독은 현재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재계약 제안을 받고 고민하고 있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재계약 제안에 대해) 우리가 열심히 해왔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인 만큼 고맙게 생각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가족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 팬들을 향한 고마움만은 잊지 않았다. “한국대표팀과 함께한 2년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훌륭한 경험이었습니다. 존경스러운 많은 이들과 함께 걸었고, 또 온 나라의 따스함도 느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멋진 팀과 함께 야심 찬 성과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올림픽 기간에 그가 보여준 환한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인사말이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