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글로벌 유통기업의 무덤이다. 세계 1, 2위 할인점인 미국 월마트와 프랑스 카르푸가 한국에 진출한 지 8년, 11년 만인 2006년 나란히 짐 싸서 떠났다. 외신은 “세계 유통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이번엔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으론 처음으로 1위 업체인 미국의 아마존이 한국에 상륙한다. 아마존은 12개국에 진출해 있는데 현지 회사와 합작 형태로 시장 공략에 나서는 건 한국이 처음이다.
▷아마존은 국내 이커머스 4위 업체인 11번가와 손잡고 해외직구 서비스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31일 오픈한다.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수천만 개 상품을 11번가 앱과 웹에서 한국어로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다. 배송기간은 6∼10일,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16만 개 상품을 엄선한 ‘특별 셀렉션’은 4∼6일이다. 배송비는 2만8000원 이상 구매하면 무료다.
▷아마존의 최대 강점은 ‘A부터 Z까지 모든 걸 판다’는 홍보 문구대로 상품 소싱이 어느 기업보다 광범위하고 촘촘하다는 것. 그동안 한국에선 구하기 어려운 주방용품, 운동화, 원서 등을 찾아 12개국 아마존을 뒤지거나, 미국 ‘블프’와 일본 아마존의 특가 찬스를 노리던 소비자들로선 아마존이 온다는 소식이 반갑기만 하다. 주문 결제 배송 반품 환불 등 모든 문의를 한국어로 할 수 있으니 온·오프라인에서 ‘아마존 주문 잘하시는 분’을 찾아 아쉬운 부탁을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월마트와 카르푸의 실패 요인으로는 ‘현지화 전략 부재’가 꼽힌다. 한국인은 백화점 같은 쇼핑 환경을 좋아하는데 외국처럼 창고형 매장을 고집하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한국 정착에 성공한 코스트코의 성공 비결도 현지화 전략 거부다. 한국 할인점과는 다른 창고형 매장에서 쇼핑하며 외국에 온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좋아한다는 설명이다.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 사이에서 기어이 차이점을 찾아내고, 가격 서비스 편리함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는 ‘까탈스러운’ 한국 시장에서 아마존이 어떤 유통 역사를 쓰게 될지 궁금하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