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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배터리 화재 논란, 초기에 잠재워 안전 담보해야[광화문에서/이상훈]

입력 | 2021-08-26 03:00:00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전기자동차와 내연기관차 중 어느 쪽이 화재에 안전할까. 최근 잇따르는 전기차 화재 뉴스를 보면 답을 고르기 쉬울 것 같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상외로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전기차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전기차 화재 위험이 과장됐다”고 말한다. 얼마 전 CNN에 출연한 미국의 한 연구자는 이렇게 밝혔다. “내연차 화재는 불 때문에 길이 막힐 때만 지역 교통뉴스 정도로 다뤄진다. 전기차는 불꽃이 조금 튀어 그을음만 생겨도 미디어들이 달려든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해도 틀렸다고만 볼 수는 없다. 미국에서 1년에 발생하는 차량 화재 20만여 건 중 전기차 화재는 1%에 한참 못 미친다. 미국 내 전기차 보급 비중은 약 3%다. 본격적으로 보급된 지 10년 남짓 정도라 명확한 안전 대응 지침이 부족한 전기차와 130년 역사의 내연차를 단순 수치로 비교하는 건 무리이지만, 자동차 마니아라면 흥미롭게 지켜볼 논쟁이다.

한국 산업계만큼은 남의 일 보듯 여유롭게 관전할 상황이 아니다. 누구보다 한국 기업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전량 리콜이 결정된 제너럴모터스(GM) 볼트EV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앞서 올 초 리콜을 단행하기로 한 현대 전기차 코나는 배터리와 차량 모두 한국 기업이 생산했다. 미국에서는 배터리 교체 리콜을 받은 코나 일부 차량에서 주행 가능거리가 80km가량 줄었다며 일부 소비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 제품만 리콜 대상이 된 건 아니다. 테슬라 포드 BMW 포르셰 볼보 등 해외 유명 전기차 및 배터리도 리콜에 들어갔다. 전기차와 배터리의 리콜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게 드물어 섣불리 한국 기업의 기술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할 순 없다.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한 신규 산업에서 생기는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너그러운 눈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국 산업의 위상이 예전과 차원이 다르다. 한국 전기차 배터리는 중국에 이어 점유율 세계 2위다. 중국 업체들이 거대한 자국 시장을 등에 업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세계 톱클래스다. 세계 주요 자동차 관련 업체와 소비자들이 한국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미국 토크쇼의 놀림감이 되어도, 가전 매장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써도 한국산 제품이 해외에서 팔리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한국 제품이 세계 1위를 놓고 경쟁하고 한국 업체가 연구개발한 기술이 세계 표준이 되는 시대다. 과거 한국 제품의 큰 고장 수백 건보다 오늘날의 미세한 결함 하나가 해당 기업과 한국 산업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국에서 직접 투자를 챙기는 분야다. 중국을 따라잡기 위한 외교안보 전략으로 추진되는 정책이라 향후 한국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설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금 적극 대응해 논란을 잠재우고 안전 담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관련 산업이 더 커지고 경쟁국들이 치고 들어오면 늦을 수 있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