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 ‘솔웨이의 순교자’, 1871년경.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있을까.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해안가 말뚝에 묶여 있다. 밀물 때가 되면 찬 바닷물이 서서히 차올라 그를 집어삼킬 것이다. 도대체 그는 누구고, 왜 이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일까?
그림 속 여성은 17세기 스코틀랜드 위그타운에 살던 마거릿 윌슨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대한 영국 왕의 간섭을 거부한 운동단체 ‘커버넌터스’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 이외에는 왕을 포함해 그 누구도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1685년 5월 11일 윌슨은 제임스 7세를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하는 선서를 거부해 익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당시 18세였다. 사형 집행관들은 나이든 신도 마거릿 맥래클런을 먼저 처형한 후 어린 마거릿을 회유했다. 존경하고 따르던 동료가 고통 속에 익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한 후였다. 그저 몇 마디의 선서만 하면 살 수 있었지만 윌슨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바닷물에 온 몸이 잠길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180여년 후 영국 화가 존 에버릿 밀레이는 윌슨의 순교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그림 속 소녀는 실제 처형지였던 솔웨이 퍼스 해안 말뚝에 묶여 있다. 붉은 색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열어젖힌 블라우스와 타탄체크 치마를 입고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입은 살짝 벌려 간절히 기도 중이다. 당시 밀레이는 저명한 화가였지만, 이 그림이 공개되자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윌슨의 상체를 누드로 그렸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죽음을 더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였지만, 어린 순교자의 누드화는 당시 누구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밀레이는 윌슨의 머리와 상체를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그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