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원작 ‘괴도 뤼팽’ 명성 등 업고… 현대 프랑스의 편견 파고들어”

입력 | 2021-08-26 03:00:00

[영감 어딨소]〈2〉넷플릭스서 공개 佛드라마 ‘뤼팽’
총괄제작자-원작 번역가 인터뷰
‘뤼팽’ 총괄 제작자-각본가 조지 케이
‘뤼팽 전집’ 출간 번역가 성귀수 씨



드라마 ‘뤼팽’의 주인공 아산 디오프(오마르 시)는 흑인 남성 외모를 이용한 분장술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범행을 저지른다. 넷플릭스 제공


《평범한 보건교사가 젤리와 싸우며 학생들을 구하는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판타지 소설에 빠진 적이 있나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 원작 소설을 산 경험은 없나요? ‘영감(靈感) 어딨소’는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함께 소개합니다. 이 원작이 왜 영상화됐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살펴보며 작품을 보다 풍성하게 들여다봅니다.》

1905년 프랑스를 뒤흔든 괴도 신사가 나타난다.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이 쓴 소설의 주인공 아르센 뤼팽.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외눈안경을 걸친 그는 변장술을 자유자재로 쓰며 삼엄한 경비를 뚫고 목걸이를 훔친다.

한 세기가 지나 같은 이름의 흑인 남성이 등장한다. 소설 속 뤼팽과 생김새는 딴판이지만 범행 방식은 그대로다. 올해 1, 6월 넷플릭스를 통해 시즌 1, 2가 공개된 프랑스 드라마 ‘뤼팽’은 르블랑의 원작소설을 재해석했다.

새로 해석된 뤼팽의 모습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공개 직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한 드라마의 인기에 원작소설을 다시 찾아보는 독자들이 생겼다. 프랑스에선 드라마 공개 직후 보름 만에 직전 연간 판매량을 따라잡았다. 파리에 있는 르블랑의 묘지를 찾는 방문객도 늘었다.

2018년 출간된 10권짜리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아르테)을 번역한 성귀수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00년도 더 전에 쓰인 뤼팽을 모르는 프랑스 청소년들이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읽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서 뤼팽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드라마 흥행 배경에는 고전(古典)의 무게감이 한몫했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원작으로 한 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유리했다. 성 씨는 “드라마 제작진이 촬영 허가를 잘 내주지 않기로 유명한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지하 납골당(카타콤)에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도 원작의 명성 덕분”이라며 “영국 작가 아서 코넌 도일(1859∼1930)이 1892년 펴낸 ‘셜록 홈스’가 2010년 영국 BBC 드라마 ‘셜록’으로 재탄생한 뒤 성공을 거둔 방식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뤼팽의 총괄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조지 케이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국가적 지원 덕에 주인공이 여러 국가의 명소에서 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을 촬영하는 등 파리를 하나의 놀이터처럼 사용했다”며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유명 프랑스 배우 오마르 시가 드라마 출연을 결정한 것도 원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원작소설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원작은 이미 영상화된 게 수십 편에 달하기에 차별화가 필요했다. 드라마 제작진은 작품 배경을 현대로 옮기면서 원작의 백인 남성이 아닌 흑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성 씨는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라는 현대 프랑스의 논쟁거리를 파고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케이는 “지금 프랑스의 현실은 원작의 시대 상황과 다르기에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하지 않았다”며 “현대의 뤼팽은 어떤 모습일지, 뤼팽의 특징을 가진 현대적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어떻게 빠져들 수 있을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 현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제작진은 현재 시즌 3을 제작 중이다. 케이는 “앞으로도 영감을 주는 원작소설의 에피소드를 추려 드라마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 씨는 “프랑스는 넷플릭스라는 세계적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자신들의 국가적 문화상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며 “한국 창작자들도 고전을 재해석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