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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칩이 마비환자의 삶을 바꿉니다

입력 | 2021-08-27 03:00:00

뇌-컴퓨터 연결 기술 소형화 바람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읽어내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에서 소형화 바람이 불고 있다. 치과에서 자연 치아 대신 임플란트를 심듯 초소형 전극을 뇌에 심어 신경세포의 신호를 읽어내는 ‘뇌 임플란트’ 기술이다. 최근 중증 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재활 치료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인 싱크론이 개발한 뉴로칩 ‘스텐트로드’는 심장 스텐트 시술처럼 뇌혈관에 뉴로칩을 넣어 신호를 포착한다. 싱크론 제공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BCI 기술 스타트업인 싱크론이 개발한 뉴로칩 ‘스텐트로드’에 대해 처음으로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스텐트로드는 클립 크기의 가는 전선형 뉴로칩이다. 심장 스텐트 시술처럼 뇌혈관에 전극을 삽입해 신호를 측정한다. 싱크론은 올해 내로 미국 뉴욕 마운트시나이병원의 중증 마비 환자 6명을 대상으로 임상 1상에 나선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작은 전극 하나가 마비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싱크론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뉴럴링크를 제치고 먼저 임상시험에 진입했다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뉴럴링크는 지난해 뇌에 뉴로칩을 이식한 뒤 두 달간 생활한 돼지를 공개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뉴로칩을 이식하고 6주 만에 조이스틱 없이 생각만으로 비디오 게임을 하는 원숭이 ‘페이저’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머스크는 트위터에 “마비 환자가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누르는 것보다 더 빨리 생각만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하반신 마비 환자도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미국 브라운대 연구진이 개발한 초소형 뉴로칩 ‘뉴로그레인’. 소금 알갱이 하나 정도로 매우 작다. 브라운대 제공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뉴로칩도 개발됐다. 미국 브라운대 기계공학부 연구진은 소금 알갱이 하나 수준인 초소형 뉴로칩 ‘뉴로그레인’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 12일자에 공개했다. 뉴로그레인은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측정한 뒤 이를 무선으로 전송한다. 연구진은 쥐의 뇌에 뉴로그레인 48개를 심어 뇌 신호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이지훈 박사후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뉴로그레인은 초소형 뉴로칩 수십 개가 네트워크를 이뤄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게 특징”이라며 “최대 770개가 동시에 뇌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조만간 영장류의 뇌에 뉴로그레인을 이식해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크기를 더 줄인 뉴로그레인 개발도 시작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연구진은 페이스북과 공동으로 사람의 대뇌 피질에 뉴로칩을 심은 뒤 생각만으로 단어를 입력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UCSF 제공

페이스북은 뉴로칩을 통해 얻은 BCI 기술을 3차원(3D)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페이스북은 2017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와 공동으로 사람의 대뇌 피질에 뉴로칩을 심은 뒤 뇌파로 생각을 읽어내는 ‘프로젝트 스테노’를 진행했다. 여기에 사용된 뉴로칩은 길이 6.7cm, 너비 3.5cm의 직사각형 대형 전극이었다. UCSF 연구진은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로 중증 사지 마비 환자의 뇌에 뉴로칩을 이식한 뒤 생각만으로 1분간 단어를 평균 15.2개 입력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7월 15일 의학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공개했다.

페이스북은 근전도 신호를 읽어내는 손목 밴드를 개발해 증강현실(AR)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페이스북 유튜브 화면 캡처

페이스북은 생각을 문자로 변환했던 BCI 기술을 인체 전반의 신호로 넓힌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HCI)로 확대했다. 현재 인간의 근육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인 근전도 신호를 읽어내는 손목 밴드를 개발 중이다. 이를 증강현실(AR) 기기에 연결하면 손목에 밴드를 차는 것만으로 메타버스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손목 기반 근전도 신호 감지 기술은 초기 단계이지만 BCI 연구에서 쌓은 기술을 적용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현장에서 작업자의 신체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뇌파를 활용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김기범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건설사업장 등 위험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가 쓰는 안전모 안쪽에 뇌파 측정 장치를 붙여 피로도, 집중력 저하 등을 모니터링해 사고를 예방하는 스마트 헬멧을 국내 스타트업과 개발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스마트 헬멧의 성능 확인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