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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최초(?)의 기사형 의견광고 “부당해고 철회하라!”

입력 | 2021-08-27 11:40:00

1925년 10월 27일





플래시백
처음엔 기사인 줄 알고 놀랐습니다. 얼핏 보기에 영락없이 기사였으니까요. 1단 크기 광고 바로 아래 실려 있으니까 당연히 광고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1단 광고는 요즘에야 나오는 ‘부양(浮揚)’광고, 즉 기사 가운데 떠있는 광고가 됐겠죠. 동아일보 1925년 10월 27일자 2면 아래쪽의 3단 크기 기사형 광고는 표현이 한 번 더 놀라게 했습니다. 제목부터가 거리낌이 없었고 성명서에는 ‘요마배(妖魔輩‧요괴떼)’ ‘광한(狂漢‧미치광이)’ ‘독사와 같이 악독한’ 등의 구절도 나오거든요. 모두 조선일보 경영진, 특히 상무이사 신석우를 겨냥해 날린 화살 같은 말입니다. 해고된 조선일보 기자와 사원들이 썼죠. 아마도 전직 기자들이 쓴 최초의 기사형 의견광고일 듯합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조선일보 1925년 9월 8일자에 논설반 기자 신일용이 ‘조선과 노국과의 정치적 관계’ 사설을 썼습니다. 내용은 일본과 소련의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조선은) 현상 타개를 위해 정치적 제국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다른 제도로 대체해야 한다. 이는 반드시 소비에트 러시아의 세계 혁신운동과 그 보조를 일치시켜야 한다’로 요약됩니다. 조선에서도 공산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일제가 그냥 넘어갈 리 없었습니다. 신문을 즉시 압수하고 무기정간을 때렸습니다. 앞서 8월 1일에 잡지 개벽이 무기정간을 당했기 때문에 한글 신문‧잡지업계에 공포의 먹구름이 몰려왔죠.

일제 조선총독부는 1925년 8월 1일 잡지 개벽을 무기정간시키면서 개벽 8월호 광고가 실린 동아일보까지 압수했다. 동아일보는 이날자 신문에서 개벽 8월호 광고 중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한 뒤 호외 형태로 다시 찍어내야 했다.


조선일보는 세 번째 무기정간이었습니다. 이번 것은 1924년 신석우가 8만5000원에 조선일보 경영권을 사들인 뒤 처음 겪는 탄압이었죠. 조선일보는 주인이 바뀐 이후로 ‘변장탐방’ 기획과 최초의 연재만화 ‘멍텅구리’ 게재, 최초의 조‧석간제 시행 등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논조도 아주 선명해져 ‘사상운동자의 기관지’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죠. 만석꾼 집안 장남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총장을 지냈던 민족주의자 신석우와 1924년 동아일보를 제 발로 나와 조선일보로 건너간 이상협 민태원 김형원 유광렬 등 전문가들 그리고 영업국장 홍증식을 중심으로 한 화요회와 북풍회 등 사회주의세력이 손잡은 결과였죠. 돈‧기술‧이념의 ‘3자 동맹’이 이뤄낸 혁신이랄까요? 신일용도 잡지 신생활 기자로 일했던 사회주의자였죠.

①조선일보 무기정간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1925년 9월 9일자 기사 ②총독부의 무기정간 남발이 부당하다고 비판한 동아일보 1925년 9월 10일자 사설 ③일제 경찰이 조선일보 임직원을 소환 조사한다는 동아일보 1925년 9월 13일자 기사 ④일제가 조선일보 윤전기를 차압했다는 동아일보 1925년 9월 15일자 기사


경영진은 하루빨리 무기정간을 풀려고 뛰어다녔습니다. 고문 이상협이 총독부를 들락거리고 신석우는 부친과 함께 이완용까지 찾아가 정간 해제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조선일보는 한 달에 1만 원, 지금의 약 8500만 원씩 적자를 보고 있었다죠. 신문을 내지 못할수록 손실의 늪은 깊어질 뿐이니 경영진은 속이 타들어갔을 겁니다. 총독부는 임직원을 소환 조사하고 윤전기까지 차압하며 목을 더 조여 왔죠. 38일 만인 10월 15일 정간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20명 대량해고가 동시에 단행됐죠. 그때까진 필화가 일어나면 필자만 해고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난데없이 대량해고 당한 이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을 겁니다.

①조선일보와 개벽의 무기정간이 해제됐다는 동아일보 1925년 10월 16일자 기사 ②조선일보 정간 해제와 동시에 대량해고 당한 기자와 사원들의 명단과 대책 논의를 소개한 동아일보 1925년 10월 24일자 기사


해직자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며 반발했습니다. 알고 보니 총독부가 신석우에게 ‘서범석 김단야가 그저 있느냐’라며 이들을 정리해야 해제가 빨리된다고 했다죠. 사회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해직자 중에는 이상협 등 전문가들도 있었죠. 친한 사이던 신석우와 홍증식이 의논해 사회주의자들과 갈등 관계였던 이상협 계열을 같이 몰아냈던 겁니다. 홍증식은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등은 내보내고 덜 알려진 사회주의자들을 지방부에 배치해 세력을 보존했죠. 북풍회는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밀려난 이상협 계열에 눈길이 갑니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죠? 이상협 등은 돈이 없어 제작기술만 넘겨주고 초겨울에 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됐습니다. 속사정까진 알 수 없었던 이들은 친정 신문에 신석우를 맹비난하는 의견광고까지 실어 여론에 호소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원문


社員(사원)의 목을 祭物(제물)로
停刊(정간) 解除(해제)된 朝鮮日報(조선일보)
出資者(출자자) 申錫雨(신석우) 輩(배)의 罪惡(죄악)!


오래동안 뎡간되엿든 조선일보는 지난 십오일에 총독부로부터 해뎡의 지령을 바다 다시 발행하게 되자 申錫雨(신석우) 金東成(김동성) 安在鴻(안재홍) 등이 음모하고 그날로 白南震(백남진) 崔龍均(최용균) 姜禹烈(강우열) 皮敎卨(피교설) 洪鍾悅(홍종열) 鞠埰鎭(국채진) 林元根(임원근) 金丹冶(김단야) 孫永極(손영극) 辛日鎔(신일용) 崔國鉉(최국현) 徐範錫(서범석) 朴憲永(박헌영) 金松殷(김송은) 柳光烈(유광렬) 金炯元(김형원) 李鍾鼎(이종정) 등 십칠인을 馘首(괵수)하고 고문제도를 페지하야

張斗鉉(장두현) 愼九範(신구범) 李商協(이상협)를 일시에 퇴사식혓는데 그리면 사실을 공개하면 간부 신석우는 만일 이번 해뎡이 느지면 손해가 더 날 것을 겁내여 총독부에 고두백배하고 이후에는 총독부에서 실혀하는 사원을 전부 퇴사식혀 명령대로 하겟다 애걸하야 교환조건으로 해뎡되엿는데 신석우는 오히려 조선일보사를 아조 ○○에 아부하는 사유를 만들기 위하야 종래 공로자도 다수 도태하고 이 사실을 세상에서 시비할가 두려하야 퇴사식힌 신문 공로자로 뎨일차 교섭한 이가 보고하야 그럿케 된 것이라고 무실한 말을 지어돌리다가 퇴사한 사람들의 추상가튼 질문에 고만 간계가 탄로하엿더라.

馘首(괵수)당한
前(전) 社員(사원) 會合(회합)
緊急會(긴급회) 對策(대책) 協議(협의)
주목할 서군 보고


이번 조선일보사에서 포악한 자본가 손에 희생된 사원 金松殷(김송은) 徐範錫(서범석) 柳光烈(유광렬) 金炯元(김형원) 姜禹烈(강우열) 洪鍾悅(홍종열) 白南震(백남진) 皮敎卨(피교설) 崔國鉉(최국현) 崔容均(최용균) 등 제씨가 대책을 강구하고자 지난 이십이일 오후 일곱시반에 시내 돈의동 悅賓樓(열빈루)에 모혀 상의한 결과 위선 실행위원으로 김송은(金松殷) 류광렬(柳光烈) 최국현(崔國鉉) 강우열(姜禹烈) 사 씨를 선정하야 금후 대책 강구를 엄하게 하고 이어 각각 퇴사 이후의 사실을 이약기하엿는데 그중 徐範錫(서범석) 씨는 말하되

『금번 도태당하든 날 오후에 申錫雨(신석우)가 나를 꾹 찔러가지고 자긔집으로 가서 이번 일을 엇더케 생각하느냐 하기에 물론 너의 처지가 대단히 횡포하다 하엿더니 이번에 총독부에 내가 해뎡 교섭 갓슬 때에 경무국에서 『너의의 태도를 곳치라』 하고 사원 명부를 펴놋고 徐範錫(서범석) 金丹冶(김단야)가 그저 잇느냐 하기에 그저 잇다 하엿더니 그러면 이 두 사람 때문에 해정이 늣는다면 엇지하겟느냐 하기에 그들을 정리하야 해정이 속히 된다 하면 단연 정리하겟다고 승낙하야 이번에 이리된 것인데 이번 너의들이 사회주의자인 줄 경무국에서 알게 되기는 뎨일차 교섭하든 사람이 보고을 하여서 알고 그린 것이다』라고 말하엿다.

一口三舌(일구삼설)의 申錫雨(신석우)
도태 리유 문답에 말이 막혀
여디업시 폭로된 그들 죄악


이 말을 들은 일동은 경무국에 교섭다닌 그들 리면에 죄악이 잠재하고 사태가 중대함을 보고 그 이튼날인 이십삼일에 실행위원 사 씨가 조선일보사로 질문을 가서 신석우와 면담한 뎐말은 아래와 갓다.
(문) 금번 이십명 도태는 무슨 리유이냐.
신석우는 미리 면회의 예고를 듯고 준비하고 잇다가 죄악이 폭로될가 두려워하야
(답) 경비 곤난으로 그리하엿다.
(문) 그러면 사회주의자도 그래서 도태햇느냐.
(답) 사회주의자 여부 업시 일톄로 경비 이천칠백원 주리기 위하야 그리하엿다.
(문) 사회주의자 도태에는 그와 다른 말을 당신이 한 데가 잇다는데 엇전 말이냐.
(답) 그런 말 한 일 업다.
(문) 누구에게 당신이 말하기를 당신이 이 총독부에 해뎡 교섭갓슬 때에 경무국에서 서범석, 김단야 일홈을 보이며 이들을 정리치 아니하면 해금이 늣는 경우에는 엇지할 터이냐 하기에 만일 그 때문에 해뎡이 늣는다면 곳 정리를 하겟다고 확답하엿노라 하고 또 이럿케 사회주의자를 세세밀々히 보고한 것은 뎨일차 교섭다니든 사람이 한 것이라고 하야 책임을 뎐가(轉嫁)식힌 일이 잇지.
(답) 그런 말 한 일 업다.
(문) 서범석이가 당신이 서군에게 그럿케 말햇다고 십여명 모힌 회석에서 공언하엿는데 엇전 말이냐.
신석우는 다시 얼골이 햇슥하여지며
(답) 그것은 서범석 군은 내가 천거한 사람임으로 개인에게 한 말이닛가 여러분에게 책임을 질 수 업다.
(문) 개인에게 한 말이라도 한 말은 잇지.
(답) 하기는 햇스나 그럿케 한 말이 아니다.
한다. 처음에는 아조 그런 말한 일 업다고 하다가 그 다음은 개인에게 한 말이닛가 책임질 수 업다고 하다가 점점 궁하매 그럿케 한 말이 아니라고 햇슥한 얼골로 벌벌 떨며 모호히 변명하엿다. 이때 김송은 씨는 한자리에서 세 마듸에 세 번식 딴말을 그 비루한 태도에 분개하야 남자로서 한 말을 안했다는 비루한 놈! 하고 추상가치 호령하니 신석우는 오즉 대답 업시 잠잠히 안젓고 또 그의 주구(走狗)로서 이 사건의 책임을 진다고 한 安在鴻(안재홍)에게 『이 뿔슈아의 개야! 얼마나 세상을 속힐 터이냐』 하고 호령하매 얼골이 창백하여지면 안젓섯다. 이에 위원 일동은 텬하 대중의 압헤 사건을 공개하기 위하야 아래와 가튼 성명서를 발표하엿더라.

聲明書(성명서)

吾等(오등)은 謹(근)히 正義(정의)를 사랑하는 民衆(민중)의 압헤 今番(금번) 朝鮮日報社(조선일보사) 幹部(간부) 幾個(기개) 妖魔輩(요마배) 申錫雨(신석우), 金東成(김동성), 安在鴻(안재홍) 等(등)의 罪惡(죄악)을 摘示(적시)하고 同時(동시)에 吾等(오등)의 態度(태도)를 表明(표명)하노라.

噫(희)라! 朝鮮日報社(조선일보사)가 去年(거년) 九月(9월)에 革新(혁신)한 以來(이래) 吾等(오등)이 同社(동사) 社員(사원)의 一人(1인)으로 筆陣(필진)을 張(장)한지 旣(기)히 一年(1년)이라. 其間(기간) 步步(보보) 血痕(혈흔)의 艱難(간난)한 處地(처지)에서 吾等(오등)은 晝宵(주소)로 淚(루)와 汗(한)을 뿌리며 鞠躬盡瘁(국궁진췌), 오직 民衆(민중)의 眞實(진실)한 동무가 되려든 過去(과거)를 回顧(회고)하고 今日(금일) 幾個(기개) 妖魔輩(요마배)의 罪惡(죄악)으로 朝鮮日報(조선일보)가 ○○에 公然(공연)히 白旗(백기)를 들고 民衆(민중)의 敵(적)이 됨을 보매 無限(무한)한 感慨(감개)로 오직 胸塞(흉색)하야 말할 바를 모르겟다.

今番(금번) 罪惡(죄악)의 首魁者(수괴자) 申錫雨(신석우)는 一定(일정)한 主義(주의)와 定見(정견)이 업고 오직 變態的(변태적) 功名心(공명심)에 心醉(심취)한 一個(일개) 狂漢(광한)으로 다만 彼(피)가 現(현) 社會(사회)에서 『뿔슈아』의 子(자)로 出生(출생)한 所以(소이)로 敢(감)히 朝鮮日報(조선일보)의 幹部(간부) 椅子(의자)를 占領(점령)하엿든 바 適(적)히 朝鮮日報(조선일보)가 去(거) 九月(9월) 八日(8일)에 總督府(총독부)로부터 停刊(정간)을 當(당)하매 新聞(신문)이 民衆(민중)의 公器(공기)라는 觀念(관념)은 秋毫(추호)도 업고 오직 私利私慾(사리사욕)에 狂奔(광분)하는 彼(피)는 幾分(기분)의 私財(사재) 損害(손해)에 疾色(질색) 焦燥(초조)하야 朝夕(조석)으로 總督府(총독부)에 出入(출입)하며 叩頭百拜(고두백배) 解停(해정)을 哀乞(애걸)하다가 當局者(당국자)의 『態度(태도)를 곳치라』는 말을 듯자 目的(목적)을 爲(위)하야 如何(여하)한 犧牲(희생)도 辭(사)치 안는 彼(피)는 社會主義者(사회주의자)로 指目(지목)밧는 몃 사람을 馘首(괵수)하겟다는 것을 祭物(제물)로 밧치고 百方(백방) 阿諛(아유)하야 從速(종속) 解停(해정)한다는 內約(내약)을 듯고 狂喜(광희) 雀躍(작약)하엿다.

元來(원래) 此種(차종) 筆禍事件(필화사건)은 從來(종래)의 實例(실례)로 보면 筆者(필자)의 退社(퇴사)로 大槪(대개) 解決(해결)되는 것인즉 그러지 안아도 不遠(불원)에 解停(해정)될 것은 明若觀火(명약관화)인데 私財(사재) 損害(손해)에 氣急(기급)한 彼(피)는 自進(자진)하야 社員(사원) 陶汰(도태)를 壯談(장담)하고 民衆(민중)의 公器(공기)를 들어 一朝(일조)에 當局(당국)의 압헤 屈伏(굴복)하엿다. 이리하야 去(거) 十五日(15일)에 彼(피)에게로는 恩典(은전)이라 할만한 一片(일편)의 指令(지령)을 바다들고 나왓다. 社會主義者(사회주의자) 馘首(괵수)는 이로써 하려니와 狂的(광적) 功名心(공명심)에 陶醉(도취)한 彼(피) 妖魔(요마)는 革新(혁신) 以來(이래) 血誠(혈성)을 다하든 有數(유수)한 社員(사원)이 彼(피)의 『뿔슈아』的(적) 橫暴(횡포) 肆行(사행)에 눈에 가시 가치 不安(불안)하얏다. 이에 彼(피) 本來(본래)의 毒牙(독아)를 나타내여 彼(피)의 走狗(주구) 金東成(김동성), 安在鴻(안재홍) 等(등)과 結託(결탁)하고 口尙乳臭(구상유취)의 小兒(소아) 崔善益(최선익)을 弄絡(농락)하야 一擧(일거)에 有數(유수)한 社員(사원)을 駈逐(구축)하고 『뿔슈아』的(적) 橫暴(횡포)를 肆行(사행)하려 하엿다.

平時(평시)이면 當然(당연)히 理事會(이사회)의 决議(결의)를 것칠 此(차) 重大(중대) 案件(안건)을 理事(이사) 幾人(기인)이 不參(불참)한대로 密謀(밀모)하야 社長(사장) 李商在(이상재) 先生(선생)의 决裁(결재)도 업시 解停(해정)의 消息(소식)을 듯고 緊張(긴장)하야 모힌 社員(사원) 金松殷(김송은), 柳光烈(유광렬), 徐範錫(서범석), 白南震(백남진), 金丹冶(김단야), 孫永極(손영극), 朴憲永(박헌영), 林元根(임원근), 崔國鉉(최국현), 李鍾鼎(이종정), 姜禹烈(강우열), 洪鍾悅(홍종열), 崔容均(최용균), 皮敎卨(피교설), 辛日鎔(신일용), 金炯元(김형원), 鞠埰鎭(국채진) 等(등)을 一時(일시)에 馘首(괵수)하고 顧問制度(고문제도)를 廢止(폐지)하야 李商協(이상협), 張斗鉉(장두현), 愼九範(신구범) 等(등)을 一時(일시)에 黜社(출사)식엿다. 資本主義(자본주의)인 現社會(현사회)에서 宂員(용원)을 陶汰(도태)하려도 豫告(예고)를 發(발)하야 辭任(사임) 自退(자퇴)케 함이 通例(통례)인데 피에 주린 毒蛇(독사)와 가치 惡毒(악독)한 彼輩(피배)는 平素(평소)에 功勞(공로)와 從來(종래)의 情義(정의)와 個性(개성)의 尊嚴(존엄)은 秋毫(추호)도 볼 것 업시 同苦同泣(동고동읍)하든 可憐(가련)한 社友(사우)를 衆人環視(중인환시) 中(중)에 呼出(호출)하야 恰(흡)히 裁判長(재판장)이 被告(피고)에게 刑期(형기)를 言渡(언도)하듯이 馘首(괵수)를 宣言(선언)하며 欣々然快哉(흔흔연쾌재)를 叫(규)하엿다.

彼輩(피배)는 敢(감)히 民衆(민중)의 公器(공기)를 私占(사점) 冒瀆(모독)하엿스며 吾等(오등) 個性(개성)의 尊嚴(존엄)을 짓발밧스며 吾等(오등)의 人格(인격)을 一個(일개) 勞働(노동)을 파는 商品視(상품시)하고 마랏다. 그리한 後(후) 此(차) 妖魔輩(요마배)도 大衆(대중)의 公眼(공안)이 무서웟든지 上記(상기) 質問(질문) 顚末(전말)과 가치 九尾狐(구미호) 가튼 奸計(간계) 流言(유언)을 案出(안출)하야 自己(자기) 等(등)의 罪惡(죄악)을 無辜(무고) 馘首(괵수)된 他(타) 社員(사원)에게 轉嫁(전가)하야 大衆(대중)의 公眼(공안)을 瞞着(만착)하고 再次(재차) 社會(사회)를 愚弄(우롱)하려 하엿다. 아! 血(혈)로 血(혈)을 洗(세)하는 罪惡(죄악)을 거듭하려는 彼輩(피배)이여! 吾等(오등)은 玆(자)에 奮起(분기)하야 彼(피) 妖魔輩(요마배)의 罪惡(죄악)을 白日靑天(백일청천) 下(하)에 曝露(폭로)하야 天下(천하) 大衆(대중)의 公正(공정)한 批判(비판)을 바라노라. 吾等(오등)은 貧(빈)하고 또한 弱(약)한 者(자)이라. ○○과 握手(악수)하고 金力(금력)과 法力(법력)을 併有(병유)한 彼輩(피배)에게 엇지 當(당)하리오만은 吾等(오등)은 正義(정의)가 最後(최후)의 勝利(승리)를 어듬을 確信(확신)함으로 正義(정의)를 사랑하는 民衆(민중)의 義劒(의검)이 彼輩(피배)의 寸息(촌식)을 斷(단)하고 太陽(태양)의 熱光(열광) 下(하)에 妖魔(요마)의 作戲(작희)가 사라지기까지 鬪爭(투쟁)코저 하노라.

一九二五年(1925년) 十月(10월) 二十六日(26일)

金松殷(김송은), 徐範錫(서범석), 柳光烈(유광렬), 金炯元(김형원), 姜禹烈(강우열), 洪鍾悅(홍종열), 白南震(백남진), 皮敎卨(피교설), 崔國鉉(최국현), 崔容均(최용균)

═(廣‧광  告‧고)═
현대문

사원의 목을 제물로
정간이 풀린 조선일보
출자자 신석우 무리의 죄악!


오랫동안 정간되었던 조선일보는 지난 15일에 총독부로부터 정간 해제의 지시를 받아 다시 발행하게 되었다. 그러자 신석우 김동성 안재홍 등이 음모하고 그날로 백남진 최용균 강우열 피고설 홍종열 국채진 임원근 김단야 손영극 신일용 최국현 서범석 박헌영 김송은 유광렬 김형원 이종정 등 17명을 해고하고 고문제도를 없애 장두현 신구범 이상협을 한꺼번에 퇴사시켰다.

그렇게 된 사실을 밝히자면 간부 신석우는 만일 이번 정간 해제가 늦어지면 손해가 더 날 것을 겁내어 총독부에 머리를 조아리고 몇 번이나 절하면서 이후에는 총독부가 싫어하는 사원을 모두 퇴사시켜 명령대로 하겠다고 애걸하여 교환조건으로 정간이 풀렸다. 신석우는 오히려 조선일보사를 아주 ○○에 아부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하여 기존 공로자도 다수 없앴고 이 사실을 세상에서 시비할까 두려워하여 퇴사시킨 공로자로 제1차 교섭한 이가 보고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실상과 다른 말을 만들어 퍼뜨리다가 퇴사한 사람들의 추상같은 질문에 그만 간사한 꾀가 탄로되고 말았다.

해고당한
전 사원 모임
긴급회의 대책 협의
주목할 서 전 기자 보고


이번 조선일보에서 포악한 자본가 손에 희생된 김송은 서범석 유광렬 김형원 강우열 홍종열 백남진 피교설 최국현 최용균 등 여러 명이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지난 22일 오후 7시반에 시내 돈의동 열빈루에 모여 상의한 결과 우선 실행위원으로 김송은 유광렬 최국현 강우열 4명을 선정하여 앞으로 대책 강구를 철저하게 하고 이어 각자 퇴사한 이후의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중 서범석 씨는 “이번에 잘리던 날 오후에 신석우가 나를 쿡 찔러가지고 자기 집으로 가서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물론 ‘너의 조치가 대단히 횡포하다’ 하였더니 이번에 총독부에 자기가 정간 해제 교섭을 갔을 때에 경무국에서 ‘너의 태도를 고쳐라’라고 하면서 사원 명부를 펴놓고 ‘서범석 김단야가 아직 있느냐’ 하기에 ‘그저 있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이 두 사람 때문에 정간 해제가 늦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였다. ‘그들을 정리하여 정간 해제가 빨리 된다고 하면 단호하게 정리하겠다’고 승낙하여 이번에 이렇게 된 것인데 ‘이번 너희들이 사회주의자인 줄을 경무국에서 알게 된 것은 제1차 교섭하던 사람이 보고를 해서 알고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입으로 세 말하는 신석우
제거 이유 문답에 말이 막혀
여지없이 폭로된 그들의 죄악


이 말을 들은 일동은 경무국에 교섭 다닌 그들의 이면에 죄악이 숨어 있고 사태가 중대한 점을 보고 그 이튿날인 23일에 실행위원 4명이 조선일보사로 가서 신석우와 면담해 질문한 전말은 아래와 같다.
(문) 이번 20명 정리는 무슨 이유인가.
신석우는 미리 면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준비하고 있다가 죄가 폭로될까 두려워하여
(답) 경비 곤란으로 그렇게 하였다.
(문) 그러면 사회주의자도 그래서 해고했는가.
(답) 사회주의자 여부 상관없이 모두 경비 2700원을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
(문) 사회주의자 정리에는 그와 다른 말을 당신이 한 적이 있다는데 어떤 말인가.
(답) 그런 말 한 적 없다.
(문) 누구에게 당신이 말하기를 당신이 총독부에 정간 해제 교섭 갔을 때 경무국에서 서범석 김단야 이름을 보이며 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해제가 늦을 경우 어떻게 할 작정이냐 하기에 만일 그 때문에 해제가 늦는다면 곧 정리를 하겠다고 확답하였다고 하고 또 이렇게 사회주의자를 자세하고 꼼꼼하게 보고한 것은 제1차 교섭 다니던 사람이 한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시킨 일이 있는가.
(답) 그런 말 한 적 없다.
(문) 서범석이가 당신이 서군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10여 명 모인 자리에서 공언하였는데 무슨 말인가.
신석우는 다시 얼굴이 해쓱해지며
(답) 그것은 서범석 군은 내가 천거한 사람이므로 사적으로 한 말이니까 여러분에게 책임을 질 수 없다.
(문) 사적으로 한 말이라도 한 적은 있는가.
(답) 하기는 했지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처음에는 아주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다가 그 다음은 사적으로 한 말이니까 책임질 수 없다고 하다가 점점 궁지에 몰리니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해쓱한 얼굴로 벌벌 떨며 모호하게 변명하였다.
이때 김송은 씨는 한자리에서 세 마디에 세 번씩 다른 말을 하는 그 너절한 태도에 분개하여 ‘남자로서 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더러운 놈!’ 하고 추상같이 호령하니 신석우는 다만 대답 없이 잠자코 앉아 있고 또 그의 끄나풀로 이 사건의 책임을 진다고 한 안재홍에게 ‘이 부르주아의 개야! 얼마나 세상을 속일 작정이냐’ 하고 호령하니 얼굴이 창백해지며 앉았다. 이에 위원 일동은 천하 대중 앞에 사건을 공개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서

우리는 삼가 정의를 사랑하는 민중 앞에 이번 조선일보사 몇몇 간부 요괴무리인 신석우 김동성 안재홍 등의 죄악을 지적하고 동시에 우리의 태도를 표명한다.

아아, 슬프다. 조선일보사가 작년 9월에 혁신한 이래 우리가 동사 사원의 한 사람으로 필진으로 참여한지 이미 1년이다. 그동안 걸음걸음 핏자국의 고생스러운 처지에서 우리는 주야로 눈물과 땀을 뿌리며 마음과 몸을 다하여 이바지하여 오직 민중의 진실한 친구가 되려던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 몇몇 요괴무리의 죄악으로 조선일보가 ○○에 공공연히 백기를 들고 민중의 적이 되는 것을 볼 때 한없는 탄식으로 가슴이 막혀 말이 막힌다.

이번 죄악의 우두머리 신석우는 일정한 주의와 정견이 없고 오직 변태적 공명심에 깊이 빠진 일개 미치광이로 다만 그가 현 사회에서 ‘부르주아’의 자식으로 출생했다는 이유로 감히 조선일보의 간부 의자를 차지하였다. 마침 조선일보가 지난 9월 8일에 총독부로부터 정간을 당하자 신문이 민중의 공적 기관이라는 관념은 털끝만큼도 없고 오직 사리사욕에 광분한 그는 얼마간 개인재산의 손해에 질색 초조하여 아침저녁으로 총독부에 드나들며 머리를 조아리고 몇 번이고 절하면 서 정간 해제를 애걸하였다. 당국자의 ‘태도를 고치라’는 말을 듣자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사양하지 않는 그는 사회주의자로 지목받는 몇 사람을 자르겠다는 것을 제물로 바치고 갖은 아부를 해서 빨리 해제한다는 이면 약속을 듣고 기뻐 날뛰었다.

원래 이런 필화사건은 기존 실례로 보면 필자의 퇴사로 대개 해결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오래지 않아 해제될 것은 명약관화한데 개인재산 손해에 깜짝 놀란 그는 자진해서 사원 해고를 장담하고 민중의 공적 기관을 들어 하루아침에 당국 앞에 굴복하였다. 이리하여 지난 15일에 그에게는 은전이라고 할 만한 한 쪽의 통지서를 받아들고 나왔다. 사회주의자 해고는 이렇게 된 것이었고 미친 공명심에 취한 이 요괴는 혁신 이래 참된 정성을 다하던 몇몇 사원이 그가 ‘부르주아’적 횡포를 자행하는데 눈에 가시같이 불안하였다. 이에 그는 본래의 독이빨을 드러내 그의 끄나풀 김동성 안재홍 등과 결탁하고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 최선익을 농락하여 일거에 몇몇 사원을 몰아내고 ‘부르주아’적 횡포를 부리려고 하였다.

평소라면 당연히 이사회의 결의를 거칠 이 중대 안건을 이사 몇 명이 불참한 상태로 몰래 모의하여 사장 이상재 선생의 결재도 없이 정간 해제의 소식을 듣고 긴장하여 모인 사원 김송은 유광렬 서범석 백남진 김단야 손영극 박헌영 임원근 최국현 이종정 강우열 홍종열 최용균 피교설 신일용 김형원 국채진 등을 일시에 해고하고 고문제도를 없애 이상협 장두현 신구범 등을 일시에 쫓아내었다. 자본주의인 현 사회에서 잉여인력을 정리하려고 해도 예고를 하고 사임 자퇴하게 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인데 피에 주린 독사 같이 악독한 저들은 평소의 공로와 기존의 따뜻함과 개성의 존엄은 조금도 볼 것 없이 함께 고생하고 함께 울었던 불쌍한 사우를 만인이 보는 가운데 불러내어 마치 재판장이 피고에게 형기를 언도하듯이 해고를 선언하며 기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저들은 감히 민중의 공적 기관을 사사로이 차지하여 모독하였으며 우리 개성의 존엄을 짓밟았으며 우리의 인격을 일개 노동을 파는 상품처럼 보고 말았다. 그런 후 저 요괴무리도 대중의 공정한 눈이 무서웠든지 위의 문답 전말과 같이 구미호 같은 간사한 꾀와 터무니없는 소문을 생각해 내어 자기들의 죄악을 잘못 없이 해고된 다른 사원에게 뒤집어씌워 대중의 공정한 눈을 속이고 또다시 사회를 우롱하려 하였다. 아! 피로 피를 씻는 죄악을 거듭하려는 저들이여! 우리는 이에 분기하여 저 요괴무리의 죄악을 해가 쨍쨍한 푸른 하늘 아래 폭로하여 천하 대중의 공정한 비판을 바란다. 우리는 가난하고 또한 약한 사람들이다. ○○과 손잡고 금력과 법력을 함께 가진 저들에게 어떻게 당하겠는가만은 우리는 정의가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을 확신하므로 정의를 사랑하는 민중의 의로운 칼이 저들의 숨통을 끊고 태양의 뜨거운 빛 아래 요괴의 장난이 사라질 때까지 투쟁하고자 한다.

1925년 10월 26일

김송은 서범석 유광렬 김형원 강우열 홍종열 백남진 피교설 최국현 최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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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기자 leej@donga.com